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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시아 권 경제도약 시장개척·기술혁신이 "열쇠"|다나카 나오키<일 경제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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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아시아는 발전이냐, 아니면 정체냐의 갈림길에 있다. 80년대 「아시아 4마리 용」으로부터 시작된 아시아의 발흥은 아세안 국가들로, 그리고 사회주의 중국·베트남으로 확대돼 가고 있다. 아시아의 활력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며,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는 지금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난제들을 안고 있다. 수출 주도형 경제발전이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장확보문제, 그리고 산업체제 정비 및 기술혁신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그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다나카 나오키는 21세기를 준비하는 아시아국가들은 바로 이 두 가지 과제의 해결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편집자 주>
다가오는 21세기를 전망할 때 제2차 대전이후 세계 질서를 규정해온 냉전의 종언이 일본주변 국가들에 명백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건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냉전이 끝남으로써 눈부시게 발흥하고 있는 아시아경제가 더욱 변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의 변화로부터 중국·베트남이 세계경제에 참가하는 문제로 얘기를 진전시켜 나가 보자.
그러고 나서 시장경제형 발전을 이룩한 아시아 국가들에 관한 변화과정으로 논리를 전개시켜 나가고 싶다.

<중국·베트남도 가세>
21세기를 바로 지척에 두고 있는 지금 동아시아의 구도는 1백년 단위의 변모 속에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러시아에는 서 유럽 파와 슬라브 파가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74년이 경과한 지금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엔 다시 서 유럽 파와 슬라브 파의 대립이라는 도식이 등장하고 있다.
슬라브 파에는 구 공산주의 영향이 농후하게 남아 있다. 러시아의 대지와 지연주의, 그리고 집단주의가 어지럽게 얽혀 있다. 푸시킨의 소설『대위의 딸」은 러시아의 토양이 충성스럽고 용맹한 병사들을 배출할 만하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벚꽃동산』에서는 중세적인 장원이 멸망해 가는 가운데 벚꽃 줄기가 잘려 넘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옛 질서의 향수에 장기는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계속된 구 질서가 무너질 때 새로운 것만이 각광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특히 새로운 것이 배금주의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날 때는 옛것이 아름다운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된다.
소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 각지에 큰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전통적인 농촌에는 러시아의 옛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지만 러시아의 농촌 공동체적 관습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기 전 단계에서는 예로부터 있어 온 것에 의존하는 것만큼 안전한 방법은 없는 탓이다.

<개혁·개방노선 가속>
러시아 극동은 당초 인구가 조밀하지 않고 농업이나 도시건설에 있어서도 공산주의의 거친 방법만이 눈에 많이 띄었다.
러시아 농촌공동체라는 각인은 약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바로 무질서로 연결되기 쉽다.
삼림·광물·원유·천연가스·어패류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곳이 많기 때문에 서방측의 접촉은 배금주의로 연결되기 쉽다.
중국이 개혁·개방노선을 가속화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중국을 범세계적 경제체제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중국의 독자성은 다음 2개 요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공산당에 의한 정치권력의 독점이다. 이 요인은 독자적으로 생겨나 생성과 쇠퇴의 사이클을 형성하고 있다. 정치변동의 배경에는 바로 이것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아직도 제3세계 국가라는 것이다. 제3세계는 탈 식민주의와 선진국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2개의 간판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오는 97년 홍콩반환을 둘러싼 문제도 주권회복이라는 흔들릴 수 없는 과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참가 문제도 아시아에서 일본의 패권주의와 연관지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0월 열렸던 중국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 대회에서「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이념이 채택됐다. 시장경제를 공산당 내부에서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극히 최근까지 위험했던 것 같다. 이를 이해하려면 사회주의가 시장경제를 포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 사회주의라고 하는 말을 빼기 위해서는「중국 공산당 지도」라는 중국의 기본원칙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이제「아시아적 정체」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시아적 전제주의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소위 인권문제가 발생한다.
또「세계 자본주의에의 포섭과정」이라는 관점만으로는 앞으로 전망할 수 없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산업체계 정비 시급>
왜냐하면 동남아 국가들은 제3세계에 속하는 역사적 멍에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하나의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장선상에서만 21세기의 구도를 그릴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베트남이 개방을 선언한 것도 의미가 크다. 일본은 베트남에 차관을 제공하고 싶었지만 미국 대통령선거 때문에 이를 보류했다. 베트남 전 당시 행방불명된 미군병사들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조지 부시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대 베트남 원조가 발표된 것은 미국의 대 베트남 경제제재가 풀렸기 때문이다.
한국·대만·홍콩으로부터 시작된 아시아의 발흥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으로 번져 갔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이 따르고 있다.
앞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골격을 결정하는데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을 계속하는 이상최종수요가 생겨나는 지역을 어디로 간주하는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그 지역이었으나 미국시장의 침체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구성은 미국시장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게 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는 시장이 될 가능성에 대해 그들은 부정적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중화학공업을 포함한 산업체계 정비와 기술혁신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사용하는 초보의 경제발전단계를 끝낸 지금 앞으로 어떻게 발전을 지속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아시아국가들이 미국시장 의존에서 왜 탈피할 수 없는가를 생각하면 바로 짐작이 가는 점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미국시장이 자유로워 새로 참여하는 자에게 간단히 편의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장기계약이 아니라도 그때그때 바로 수입해 유통시켜 주는 구조가 미국에는 완비돼 있다.
둘째로 미국시장은 가격탄력성이 크다. 값이 싸면 수요증가가 기대되는 곳이다. 미국 내 소득분배는 매우 불평등하므로 값싼 물건은 일정한 소득계층으로부터 환영받는다.
셋째로 미국은 신규참여자에 대해 비록 적은 몫이라 하더라도 기회를 부여하고 그에 대한평가를 통해 뒤에 구입계획을 변경하는 식의 관행이 뿌리를 박고 있다.
이민으로 된 사회에 있어「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일본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앞에서 얘기한 세 가지 점으로 미뤄 볼 때 부정적이다.
일본시장에 침투하려면 일본기업의 사고와 행동양식에 따르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시장이 개방되도록 계획과 방법을 까 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산업사회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는 문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기술개발에 의해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국가적 지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을 뒤쫓는 국가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동남아시아의 경우 중화학공업분야에 투자를 계속하기 위해선 경제주체나 사회간접자본 적인 측면에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 시설확충 난제>
동남아시아 화교는 유통·금융·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중화학공업은 정정 불안이라는 위험 때문에 조심스럽게 회피해 왔다.
화교는 홍콩을 중심으로 광 동성에까지 넓고 깊게 침투, 하나의 거대한 경제단위를 이뤘지만 장기간 고정자본을 대량으로 계속 투입하는 중화학분야는 피해 왔다.
호텔·수송 등 확실히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분야에만 투자한 것이다. 그 결과 서비스산업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이제 이것이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화학투자가 행해지려면 먼저 사회간접투자가 정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정부가 행하면 국채증발이 되고 민영화하면 사채를 대량 발행해야 한다. 앞으로 자본조달의 필요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21세기 아시아경제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같은 엄청난 규모의 자본조달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를 예측해야만 한다.
세금의 징수, 재정적자의 허용범위, 금융시장정비 등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긴급한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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