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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패권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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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념과 군사력 대절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질서는 경제력을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우루과이라운드(UR)로 대표되는 범세계적인 자유무역질서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역확대모색과는 별도로 한편에서는 자국 나아가 인접 국가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지역주의가 거세게 일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각국이 기술력을 무기로 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다.
올해부터 경제·통화동맹으로 통합되는 유럽공동체(EC), 미국과 캐나다·멕시코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들 거대한 지역경제통합체 외에도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대양주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크고 작은 지역간 경제통합 등. 여러 형태의 지역통합은 역내국가간의 교역확대와 이를 통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의 개선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역외국가에 대한 차별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 각국 특히 선진국들의 기술패권주의 경쟁과 아울러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합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 상품의 기술·품질능력을 높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도 우리 상품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현재 우리의 수준은 그러한 단계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최상위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기술·품질개선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 나가면서 세계적 추세로서의 지역간 경제협력체제 강화에 대응키 위한 경제 외교적 노력이 시급하다. <편집자 주>
90년대 들어 동서 냉전체제 종식과 함께 세계 각국은 기술력을 무기로 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술 선진국들은 기술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국 개발 신기술은 품안에 보호하고 타국의 기술개발은 규제하려는「기술패권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기술 우방은 옛말>
이에 따라「정치의 지방은 있어도 기술협력의 지방은 없는」냉엄한 현실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신년을 맞아 우리 정부와 기업·학계가「기술입국」의 새 각오를 다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국제무대에서 경제력·외교 력·군사력은 기술력의 뒷받침 없이는 무의미한 시점에 이른 것이다.
최근에 두드러지고 있는 기술전쟁은 우리와 같은 개도국의 핵심기술 접근 시도에 대한 선진국의 견제강화다.
미국·일본·독일 등 기술 선전 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거래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확대해 나가면서도 기술문제에 있어서는 지적소유권 보호를 들고 나와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에 발맞춰 최근 각국 정부의 자국 기술개발지원을 무역마찰을 일으키는 보조금으로 간주, 규제 규정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들이 정부지원에 의한 개도국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견제하고 기술정책까지 간섭하겠다는 흑심을 드러낸 것이다.

<선진수준의 44%>
기술선진국의 기술이전 회피로 기술료가 갈수록 비 싸지고 첨단핵심기술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상황임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우리나라의 도입기술 건당 기술료는 88년 90만 달러였으나 91년에는 2백3만 달러로 2·3배나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술수준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 있을까.
상공부는 우리 수출주력산업의 평균 기술수준이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되는 44%수준으로 보고 있고 과학기술처도 선진국에 8∼10년 뒤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선진국을 1백으로 할 때 특히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업종은 ▲요업기술(31%) ▲가전제품(34%) ▲조선(38%) ▲반도체·냉동공조·고압 기기(39%) ▲섬유제품·정밀화학·비철금속(41%) ▲통신 기기(42%) 등이다. <그림 참조>
또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신태영 박사 팀이 최근 한국의 기술력 종합수준(88년 기준)을 선진공업 7개국과 비교 평가한 결과 한국(1백79)은 미국(5백35)의 33%, 일본(4백33)의 4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게다가 해외기술 의존도도 우리나라는 22.3%인 반면 미국은 1.6%, 일본은 6.6%, 독일은 6.2%여서 핵심 원천기술에의 접근이 차단될 경우 현재 수준의 국제경쟁력 확보도 어려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 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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