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고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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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아버님 기일에 쓸 제수를 준비하려고 시장에 갔다. 예전 같으면 빈손으로 가서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왔겠지만 요즘은 큰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나간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몇 번이나 같은 장소를 지나쳤다.
『뭘 찾기에 아직 빈 바구니꼬?』
장날마다 만나는 아주머니말씀을 듣고 나서야 내가 정말 뭘 열심히 찾고 있음을 알았다. 작년에는 고향장터에 가서 직접 꺾어 삶은 고사리를 사다 기일에 쓰고, 명절에 쓰고, 육개장·매운탕까지 푸짐하게 해먹었는데 올해는 시기를 놓쳐 준비를 못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는 고사리 뿐 아니라 토란·호박고지 등이 모두 중국산뿐 우리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중국산 고사리를 사 바구니에 담았으나 씁쓸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고 수입자유화로 시장 문이 열리면서 참깨·대두·녹두·수수·조·대추·밤·당면·취나물 등 농수축산물이 앞다퉈 들어왔다. 관세청을 통과한 것만도 무려 1백50여 종류가 된다고 한다.
옛말에 「날 돌이 괸 돌 깬다」는 말이 있다. 「나그네가 주인 노릇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 것보다 더 당당한 기세로 우리시장에 침투, 이제는 제사상까지 점령하고 있으니 심치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산채가 자생하고 있는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해 산채를 두고도 채취하지 못하고 있다. 또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산을 마구잡이로 깎아대는데도 원인이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골프장 조성에 필요한 잔디가 전량 중국에서 수입된다는 사실이다. 이러다간 우리의 아름다운 산은 모두 골프장에 빼앗기고, 우리 농산물은 모두 중국산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며 떡을 빼앗아 먹는 호랑이이야기도 골프장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산아 산아 누가 더 푸른가 내기해보자」는 동요도 음악 책에서 사라질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황인필<경북 상주군 함창읍 오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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