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온정에 추위도 잊어요"|명동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박현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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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896년 겨울,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구세군 본부 측이 난파됐다 구조된 선원들을 돕기 위해 거리에 국냄비를 걸어놓고 「이 냄비에 국을 끓게 합시다」라고 외치며 모금한데서 비롯됐다는 자선냄비.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어김없이 거리 곳곳에 걸린 자선냄비는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서울 명동에서 사당의 종을 흔들며 「작은 나눔」을 호소해온 구세군 사관학교 (교장 김석태) 생도 박현배씨 (29)는 『자선냄비에 끓어오르는 온정 때문에 추위에 발 시린 것쯤은 걱정도 안 된다』며 활짝 웃었다.
일반 기독교와는 달리 「하나님의 군대」임을 자처해온 구세군은 독특한 제복과 함께 최고 지도자인 대장을 비롯, 부장 정령 부정령 참령 정위 부위 사관생도 등 군대 편제와 흡사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런던 빈민가의 주민들을 상대로 전도 활동을 펴기 시작한데서 비롯된 구세군은 복음전파와 구제사업을 함께 실천하고 있는 교회로 한국에 전파된지도 이미 64년이나 됐다. 박씨는『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구세군을 연말이면 자선냄비를 들고 거리에 등장하는 기관정도로만 알고 있는게 조금은 아쉽다』며 구세군은 일반 기독교와 성서해석이나 예배의식 등은 거의 동일하지만 영세민 구호, 사회 복지 시설 지원, 재해민 구호 등 주로 의지 할 곳 없는 불우한 이웃들에 사랑의 손길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금 활동을 하는 동안 하루종일 구걸한 돈을 모두 털어놓는 앉은뱅이 아저씨, 1백만원짜리 수표를 마치 종이쪽지처럼 접어 슬쩍 넣고 가신 할아버지, 학우들이 모은 돈을 정성스레 놓고 가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는 그는『세상은 아직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할아버지·아버지가 사관 (목사)이었으며 3명의 형과 여동생이 모두 구세군 교회에 몸을 담고 있는 정통 (?) 구세군 가족인 박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시작해 자선냄비 모금 활동 경력이 10년이 훨씬 넘는 베테랑이다. 올해엔 대선 분위기에 자선냄비가 뒷전에 밀릴까 매우 걱정스러웠다는 그는 『하지만 자선냄비를 모른체 하지 않는 변함없는 손길에 한숨 돌렸다』며『올 모금 목표액 7억원을 무난히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현재 구세군은 자원봉사자들과 사관들이 함께 24일 자정까지 전국 1백65곳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는데 25쌍의 부부와 13명의 독신 남녀로 구성된 구세군 사관학교 전교생 63명은 명동일대를 맡고 있다. 박씨는 『같은 사관생도인 아내도 근처 어딘가에서 메가폰을 잡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자선냄비를 통해 이웃을 돌아보며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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