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수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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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22일 정식 수교가 이뤄졌다. 이것은 우리 북방정책의 또 하나의 결실이자 공산권 변혁의 확산을 의미한다. 이번 수교로 우리나라는 쿠바·라오스 등 소수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 국교를 맺어 명실상부한 전방위 국제관계를 이룩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리적 거리에 비해 정치·군사적 관계는 비교적 밀접했다. 그것은 2차대전후 같은 분단국가로서 남북사이에 이데올로기적인 내전을 겪었고,그 과정에서 한국이 참전해 남부 월남편에 서서 싸웠기 때문이다. 상주병력 5만명 수준에 달했던 파월 한국군은 73년 미군과 함께 철수했다.
사이공이 공산군에 함락된 75년 4월30일 남부월남주재 한국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양국간의 외교관계는 단절됐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끊긴 것은 아니다. 공산화된 베트남은 미처 철수치 못해 억류됐던 우리 공관원들을 일부는 송환하고 일부는 구금했다가 5년만에 석방했다. 우리는 바다에서 표류하던 베트남 난민 4백여명을 받아들였다.
80년대들어 양국관계는 경제면에서 발전되어 83년에 간접교역이 이뤄지고,88년부터는 직교역까지 열려 지금은 「북방국가」중 한국·러시아에 이어 세번째 교역국가가 되어 있다.
이번 수교는 이런 지속적인 관계발전의 연장선에서 한국정부의 북방정책과 베트남의 「도이모이(신변화)」정책이 접합되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이 86년부터 시작한 도이모이정책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부문에 걸친 발본적 개혁정책의 총칭이다. 따라서 이것은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라고 할 수 있다.
한월수교는 한때 교전상태에 있었던 국가들이 과거의 감정적 대립과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관계에 들어서는 국가관계의 실용주의적 발전이다. 그런 점에서 한중수교와 맥을 같이한다.
베트남은 영토가 33만평방㎞로 남한의 3배가 넘고,인구는 6천6백만명으로 우리의 1.5배다. 게다가 자원이 풍부하면서 국토는 아직 미개발상태여서 황무지가 많고 공업은 저수준에 놓여있다. 도이모이를 시작한 이후 경공업이 성장하여 소비물자는 증대되었으나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이번 수교는 베트남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우리의 기술과 자본에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경제협력은 앞으로의 대베트남정책의 중심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한때 우리의 교전상대였고,월남전 참전은 우리의 경제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감안해 한­베트남간 경제협력 증진은 물론,우리나라에 와 있는 베트남난민과 베트남에 있는 한인혼혈 2세들의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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