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대학에 예산 지원해도 학생선발·교수충원 간섭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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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대학의 자치는 확립된 개념이다. 학생 선발 방식이나 교수 숫자를 포함한 대학 운영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다. 대학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

도쿄(東京)대학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63.사진) 총장은 25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대학 자율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일본 공립고의 쇠퇴를 예로 들며 "(정부가) 경쟁을 억제하려 해 봐야 학생.부모는 다르게 대응한다"며 "교육시스템이 한번 붕괴되면 재건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경쟁 완화를 위한 조치를 취해도 더 좋은 고교.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경쟁을 한다는 의미다.

고미야마 총장은 도쿄대-서울대 간 포럼을 위해 24일 방한, 이날 오전 서울대 공대에서 '지속 가능성의 과학을 위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특강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한국의 교육부는 재정 지원과 교수 충원 문제를 내세워 대학들에 자신의 입시 안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어떤 입시가 좋은지는 나라별로 다를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대학 시스템, 교육 시스템을 한번 무너뜨리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나.

"과거 일본에는 좋은 공립 고교가 많았다. 고교 입시가 과열됐다며 학교군 제도를 도입했다. 가령 도립(都立) 히비야(日比谷) 고교에 지원하는 학생은 히비야고가 포함된 3~4개교 군에 응시한 뒤 제비뽑기로 입학 고교를 최종 정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 200명쯤 도쿄대 합격생을 냈던 히비야고가 이 제도 도입 후 한 명도 합격생을 못 내게 됐다. 이렇게 도립고가 쇠퇴하자 소수의 사립고가 부상해 더 심한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정부가) 경쟁을 억제하려 해 봐야 학생.부모의 대응은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 도립 고교를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교육 시스템의 붕괴는 금세 일어나지만, 재건에는 30~40년이 걸린다."

-도쿄대는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나.

"2004년 국립대에서 법인화됐지만 정부로부터 43%의 예산 지원을 받는다. 이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연구 컨셉트를 제안하면 문부성으로부터 '경쟁적 경비'라는 것을 받는다."

-예산 지원을 받는 만큼 정부 간섭도 있을 텐데.

"간섭은 거의 없다.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전체 학생 정원조정 문제뿐이다. 교육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학과별 학생수, 입시, 교수 증원, 학과 개설은 자유롭다."

-도쿄대가 세계적 대학이 된 비결은.

"좋은 교수를 채용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대학을 좋게 만든 것이다. 이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다. 이 문제는 대학 자치와도 관련이 있다. 대학의 자율성은 학내뿐 아니라 학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의 문제는 사회와 타협할 수 있지만 학문에 관한 한 대학은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도쿄대의 성장이 일본의 국가경쟁력에 기여했다고 보나.

"도쿄대는 올해로 130주년이다. 세계를 리드할 만한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 대학의 의미다. 도쿄대는 세계적 연구 성과로 아시아의 아이디어를 세계에 확산하고자 한다. 이게 바로 국제화이며, 도쿄대의 국제화는 일본의 국제화와 직결된다."

-대학에서의 엘리트 교육을 어떻게 보는가.

"작은 사회의 작은 리더도 필요하고, 세계적인 리더도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런 리더를 양성하느냐가 중요하다. 도쿄대에서 그런 리더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21세기 대학 경쟁력 강화의 관건은 무엇인가.

"과거 대학의 국제화라고 하면 국제학회에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이제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갖고 학회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새로운 학문으로 세계를 리드하는 것이 진정한 대학의 국제화이며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게 가능한 곳은 대학뿐이다."

박소영.권근영 기자

◆고미야마 히로시 총장= 2005년 4월 제28대 총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4년. 1967년 도쿄대 공학부 졸업 후 72년 같은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강사.조교수를 거쳐 88년 교수가 됐다. 대학원 공학연구과장, 부총장, 도서관장을 지냈다. 화학공학자로 지구온난화.에너지.빈곤과 같은 국제 사회의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 활동하고 있다. 부총장 시절인 2002년엔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산업재건을 위해 "움직여라 일본"이라는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저서로 '지구 지속의 기술', '입문 열역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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