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연예인들이여 '거품 많은 광고' 출연은 자제해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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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체부의 체온이 남아 있는 편지를 받아 본 기억이 아득하기는 일반인이나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작해야 할인점 광고나 세금고지서, 범칙금 안내 정도다. 간절한 사랑 고백이나 싸늘한 저주의 글이 인터넷에 차고 넘친 이후의 적막한 풍경이다.

팬레터를 띄워 본 사람들의 최대 궁금증은 무얼까. "스타가 이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다. "자신에게 배달된 편지를 과연 직접 읽을까. 아니 제대로 전달되기는 할까." 소속사 직원이 대신 읽거나 휴지통에 그대로 처박히는 '참상'을 예측하면서도 굳이 우표를 붙여 보내는 까닭은 스타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는 그 순간의 설렘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단체(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비.이영애.장동건.고소영 등 당대 최고의 몸값을 구가하는 연예인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사모의 마음이나 사과의 촉구는 아니고 당부가 주된 내용이다. 본인이 읽지 않으리라 염려해서인지 전문을 일반에 공개했다.

발신자는 '아파트값 거품 빼기 운동본부'다. 짓기 전에 분양부터 하는 아파트 광고의 출연을 자제해 달라는 호소문이다. 첫째, 귀하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명성이 '거품아파트'를 판매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둘째, 귀하가 받은 광고료도 분양가에 포함돼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셋째, 귀하가 진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광고에 출연한 것으로 생각하니 평범한 시민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감안해 신중하게 생각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에 대해서도 여론이 분분한 상태다. 계약을 해지한 경우도 발생했다. 이쯤 되면 '연예인 못 해먹겠다'는 아우성이 나올 만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재능으로 내가 돈 버는 데 왜 시비를 걸어'라고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비가 엇갈리는 자리의 마무리에는 희비도 엇갈린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인도주의 사회가 '좋은 나라 운동본부'의 궁극적 목표다.

시민단체에서 보낸 편지가 설득적인 이유는 시종일관 예의와 품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득은 듣는 사람에게 이 말을 들으면 미래에 내가 이득을 얻는다는 믿음을 주는 과정이다. 야단과 호통을 치거나 법조문을 잔뜩 인용했다면 장황한 설교나 건조한 설명에 그쳤을 것이다.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산적 반응은 반발이 아니라 반성이다.

스타의 이미지와 광고의 메시지는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스타의 분별이 필요하다. 스타는 스스로 대중에게 빚진 자라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한다. 아파트 가격의 거품이 스타의 기품에 가려져서는 곤란하다. 신비감도 좋고 친근감도 좋지만 스타의 자신감 뒤에는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 오래 살아남는다. '나는 소중하니까요'라는 광고 카피의 후속 편은 '남도 소중하니까요'가 어떨까 싶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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