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명작가의 치열한 예술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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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고 김욱규 화백의 유작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동숭동 갤러리21(766-6511)을 찾은 관람객들은 한 무명작가의 치열한 예술혼에 진한 감동을 느낀다.
원로들의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생동감과 요즘의 화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순수성·정직성·철저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작가의 작품 전시회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다양한 양식의 실험이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생전에 그 흔한 개인전 한번 열어 보지 못했던 김욱규는 화단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채 무려 4백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기고 90년 7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다른 화가들이라면 현실에 안주할 나이인 55세 때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가 이후 20년 동안 자신의 불행한 삶을 예술로 녹이다 갔던 것이다.
그는 우리 근대미술 1세대작가다. 이중섭이 2년 선배이고 김흥수가 2년 후배다. 그가 가르친 제자 중 몇몇은 현재화단의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함남 미술동맹 위원장을 맡았던 북에서의 전력과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중앙화단에의 진출이 좌절되자 송탄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등 가난하고 고독한 재야화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의 작품들은 제작시기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남에게 보여 주려 거나 팔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그림에는 사인도 제목도 연대 표시도 없고, 양식이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평론가 이영철씨는 그가 살던 동네이름을 따네 시기로 나눈다.
초기에 해당하는 송탄시기(1955∼71)에는 북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삶에 대한 비애와 예술가의 고뇌를 그렸다.
왕성한 양식적 실험기인 삼각지 시기(71∼80)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형상화하다 70년대 말이 되면 인간들간의 갈등을 주로 담았다.
방배동시기(80∼82)는 추상이 본격적으로 실험되는데 큐비즘·미래파·구성주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생애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부천시기(82∼90)는 그 동안의 집념어린 시도가 완숙되면서 독자적인 양식을 얻는다.
우주 생성과 질서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이 시기의 초현실주의적 작품에는 사물이 사라지고 빛과 어둠. 그리고 운동만이 나타난다.
그러나 추상작업을 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는 순수추상의 단계에
도달하자 곧 고전적인 회화로 급선회한다.
작고하기 직전 그의 화풍은 이전과는 달리 맑고 밝고 경쾌해진다.
이는 그가 발견한 미의식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는 타계하기 직전『모든 작품을 태워버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부친의 유언을 지키지 않은 자식들의 배반적 효심에 의해 한 치열한 예술혼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지난 1년간 이번 유작전을 준비해 온 이영철씨는 그를「한국 미술 최후의 모더니스트」로 부르면서『그에 대한 예술적 평가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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