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노무현 따라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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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비리의 통합체다. 이 글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날 잡아가라 선관위여!" (아이디 '멋진남자', 선관위 자유게시판)

"한나라당 예비후보를 지지하지 마십시오. 이제 나는 특정 정당을 언급했고 지지 철회를 유도했다. 선관위는 나를 고발하라."('kojora', 네이버 뉴스 댓글)

제17대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특정 후보에게 유리, 또는 불리한 글을 인터넷에 올리지 못한다'는 선관위의 단속 지침(6월 22일)에 네티즌이 반발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선관위 게시판에 일부러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비판 글을 올리고 고발을 자청했다. 한 후보의 팬클럽은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노무현 학습효과'라는 말이 나온다. 노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선관위에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발언과 태도를 보이며 헌법소원을 낸 뒤 나타난 '법 무시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선거법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법 개정 이전의 '불복종 운동'은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탈법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우려했다.

◆"나를 고발하라"며 법에 정면 도전=22일 이후 선관위 게시판에는 '선관위는 선거간섭위원회' '선관위는 각성하라' '주권침해'라는 비난성 글들이 쇄도했다. 24일 하루에만 3000여 개에 이른다. 각 포털에도 비슷한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빗대 불만을 표시하는 네티즌이 많다. 아이디 'jungiun'은 네이버의 선관위 관련 뉴스에 "노무현 대통령도 선관위 무시하는데 국민은 대통령보다 위에 있다. 그러므로 선관위를 무시해도 된다"는 댓글을 남겼다. 일부 네티즌은 검은 리본(▶◀)과 함께 '민주주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문구를 반복해 올리며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단속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팬클럽 '대한민국 박사모'는 "법률적인 검토를 마치는 대로 조만간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회장 정광용(49)씨는 "현행 선거법은 인터넷 댓글과 디지털 동영상을 전면 규제함으로써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선관위의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 단속 지침에 항의하는 인터넷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곤혹스러운 선관위=선관위는 "현행 법 규정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선거법(93조)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특정 정당과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거나 정당 명칭과 후보자 성명을 나타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상은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도화 인쇄물, 녹음.녹화테이프. 어길 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선관위 사이버조사팀 관계자는 "1997년 대법원이 '컴퓨터통신 역시 문서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뒤 인터넷 게시물에도 동일한 제한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판도라TV 같은 UCC 사이트도 인터넷 언론사로 분류해 선거보도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고의적인 위법행위에 선관위는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현실적으로 위법 행위를 모두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한 실무자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선거법을 무시하는 행태가 이어진다면 선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대통령 행동 배우고 있다' 우려=학자들은 현행 선거법이 규제 위주라며 개정의 필요성에 많이 공감했다. 그러나 저마다 자기 입장을 주장하며 선관위 결정에 대해 비웃는다면 공정한 선거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려대 장영수(법학) 교수는 "문제점이 있다면 여론 수렴을 거쳐 국회에서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현행 선거법과 선관위를 무시하고 '할 말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태도처럼 인터넷에서 위법적인 의견과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숭실대 강경근(법학) 교수는 "국민이 정치적 수반이고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배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인성.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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