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안정효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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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안정효씨의 신작 장편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제목이 암시해주듯 영화를 소재로 하여「영화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진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최초로 영화를 다룬 소설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영화감독이 된 화자(화자)가 「헐리우드 키드」라는 별명의 영화광인 옛 학창시절 친구의 삶을 더듬고 있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다름 아닌 4·19세대이며 영화세대인 작가 안정효씨의 영화에 대한 체험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풍요로웠을지 모를 옛 시절을 영화를 매개로 향수어리게 펼쳐 보이는 작가자신의 추억담인 것이다.
영상의 문화적 체험으로 세대를 구분하자면 지금의 10대와 20대 초까지는 CF세대, 20대 중반에서 30대까지는 흑백TV세대, 40대와50대는 영화세대이자 라디오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세대의 막내둥이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60년대 초 명절이면 강아지를 극장 위에 올려놓아도 손님이 몰린다던 영화의 황금기인 그 시절, 한때 영화가 우리의 꿈과 인생을 지배한 적이 있었던「시네마전국」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오래 전에 잊은 줄로만 알았던 그 낡은 흑백필름의 기억과 감동을 돌이켜보는 즐거움을 느꼈다.
흔히들 헐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꿈」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현실세계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들이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상을「꿈」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현실감을 마취시키고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일삼는 공상이나 몽상을「꿈」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바로 여기에 헐리우드의 양면성이 자리잡고 있다.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주인공은 그의 별명인 헐리우드 키드처럼 꿈꾸는 소년, 즉 몽상가다. 영화를 통해남의 삶만을 엿보고 살아온 헐리우드 키드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감을 상실한 채 한 아까운 생애를 끝마친다. 작가 안씨는 헐리우드 키드라는 어이없는 생애를 통해 그림자 놀이인 영화라는 환상이 우리의 정서적 체험과 우리의 삶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껏 수많은 영화가 우리에게 거짓된 환상을 불러 일으켜온 해악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은 이 소설에도 등장하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인생의 낙원』같은 삶의 진실된 의미를 보여주는 명작들이 있어왔기에 나는 아직도 영화를 하고 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다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TV와 CF가 대부분의 문화적 체험인 TV키드와 CF키드들의 앞으로의 생애는 과연 어떨 것인지. 【배창호<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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