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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변신 로봇 변하지 않는 소년의 로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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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12면

카타르에 위치한 미군기지에 정체불명의 군용 헬기가 착륙한다. 중무장한 병사들이 에워싸고 정체를 밝히라고 외치자, 헬기는 순식간에 거대 로봇으로 변해 기지를 박살내버린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어른의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헬기ㆍ자동차ㆍ전투기 등이 형체를 바꾸어 로봇으로 변하고, 게다가 말까지 하는 새로운 생명체라는 설정은. 그건 만화가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설정이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과 힘을 지닌 생명체 ‘트랜스포머’가 사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여왔다. 모든 힘의 근원인 큐브가 지구로 날아오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하여 트랜스포머들 역시 지구를 찾아오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ㆍ마이클 베이 연출의 ‘트랜스포머’

혹시 ‘게타 로보’ ‘콤파트라 V’ ‘용자왕 가오가이거’ 등의 변신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성장한 경험이 있다면, ‘트랜스포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로봇이 변신하는 광경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낄 것이다.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변신 로봇이 눈앞에서 리얼하게 재현되는 모습을 보는 순간 ‘트랜스포머’에 빠져들게 된다. 여자아이들이 ‘요술공주 밍키’ 등을 보면서 ‘변신마법’에 매력을 느꼈던 것처럼, 사내아이들은 거대한 변신 합체 로봇을 보면서 열광했었다.

‘엑스맨’ 세대를 위한 변신로봇 영화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84년의 일이다. 단순히 합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승용차와 트럭 등이 로봇으로 변하는 설정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재하는 로봇 역시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후 ‘트랜스포머’는 ‘트랜스포머 초신 마스터 포스’ ‘트랜스포머 비스트 워즈’ 등 다양한 시리즈물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트랜스포머’가 실사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믹 북의 수퍼 히어로들이 속속 스크린에 등장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웅’의 재현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초월하고픈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낸 일종의 판타지였다. 반면 로봇이 등장하여 격투를 벌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트랜스포머’는 어딘가 유치한 상상력 같았다. 변신로봇을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영화로 재현한다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었다. 실사영화에 등장하는 변신로봇을 보면서 과연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을까? 너무나 유치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것은 ‘쥬라기 공원’에서 재현된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체험이다. 아니 순전히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와 오르크족을 보는 것과도 또 다른 의미다. ‘반지의 제왕’은 인간의 상상력이 특수효과를 통하여 얼마나 현실적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판타지 영화다.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현실로서 재현해낸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변신로봇이라면 어떨까? 변신로봇을 상상력의 하나로서 기꺼이 받아들일 어른 관객은 얼마나 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을 리얼리티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트랜스포머’도 가능하다. 일단 눈으로 보는 변신 로봇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자동차가 변하여 로봇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정말 리얼하다. 로봇들의 격투도 마찬가지다. ‘더 록’ ‘나쁜 녀석들’ 등을 통해 액션장면 연출에 있어서는 고수임을 증명한 마이클 베이 감독은 ‘트랜스포머’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도구가 자동차건 전투기이건 거대한 변신로봇이건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액션은 블록버스터의 진가를 느끼게 해준다.

유아적 취향? 원초적 쾌락!
물론 ‘트랜스포머’의 줄거리는 약간 삐걱거린다. 굳이 필요없는 인물들도 꽤 있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의 일반적인 불량률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트랜스포머’는 `환상의 커플`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에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트랜스포머’는 기대할 만한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트랜스포머’를 선택한 것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스필버그는 1980년대 ‘죠스’ ‘미지와의 조우’ ‘E.T.’ 등을 통해 아이나 마니아들만 좋아했던 SF와 공포영화를 메이저로 끌어올린 영웅이다. 당시 스필버그와 조지 루커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적 취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키덜트(kidultㆍkid+adult) 세대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이미 아카데미를 석권하며 거장으로 인정받는 스티븐 스필버그이지만, 유아적이라기보다는 원초적인 쾌락을 절대로 거부하지 못한다. 남자아이에게 변신로봇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로망이다. 여자아이들의 마론 인형처럼. 마이클 베이 역시 최근에는 약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저력만은 여전하다. 스필버그의 자장 안에 있는 마이클 베이는 전작들처럼 지나친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고, 기본적인 연출에 충실하다. 마이클 베이의 최고작인 ‘더 록’처럼 유머와 액션이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트랜스포머’는 볼거리가 차고 넘쳐서 가끔은 쉬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영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트랜스포머’의 특수효과는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특수효과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트랜스포머’는 우리가 익히 보았던 특수효과로,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변신로봇의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는 놀라운 ‘판타지’ 영화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체험이고, 그것만으로도 ‘트랜스포머’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변신로봇의 격투를 본 자동차 안의 아이가 “Cool, Mom!`이라고 외칠 만한 영상을 한껏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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