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향수' 타고 톰슨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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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에 '프레드 톰슨 바람'이 불고 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테네시주 상원의원을 지낸 톰슨(64)은 1년 이상 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수위를 지켜온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추월할 정도로 급부상하고 있다.

톰슨은 온라인 매체인 라스무센 리포트의 최근(11~14일) 조사에서 10여 명의 당 예비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공화당 예비 선거 유권자 618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톰슨의 지지율(28%)은 줄리아니(27%)를 앞섰다. 오차 범위 내이긴 했지만 그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1주일 전 같은 조사에서 톰슨의 지지율은 24%로 줄리아니와 같았다. 그전에는 줄리아니가 상당히 앞섰다.

톰슨은 미 NBC TV의 인기 드라마 '법과 질서(Law & Order)'에 지난달 말까지 검사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요즘 국내에서 폭스채널로도 방영되고 있다. 그는 아직 공식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줄리아니와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공화당 주류인 보수파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리아니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뉴욕을 복구하면서 유능한 리더십을 발휘, 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검증이 본격화하면서 그의 인기는 꺾이는 추세다. 줄리아니는 낙태 찬성, 동성애 인정, 줄기세포 연구 허용을 주장하는 등 정치 성향이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에 가깝다. 또 재력가인 그가 운영해 온 로비회사의 문제가 드러났고, 세 번 결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이 재생산돼 이미지가 많이 구겨졌다.

매케인은 반전 여론이 확산하는데도 이라크전을 강력히 지지한다. 또 공화당 다수가 반대하는 불법 이민자 구제에 적극적이다. 롬니는 보수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든 기독교 복음주의자가 멀리하는 모르몬교도라는 게 문제다. 이들에 비하면 톰슨은 공화당의 전형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요새인 기업연구소(AEI) 객원연구원이다. 그는 낙태 금지, 동성결혼 반대, 세금 감면, 이민 제한을 강조한다.

지난달 복음주의 단체 회원들이 그의 연설을 듣고 열광한 것도, 네오콘의 거두인 딕 체니 부통령의 큰딸 엘리자베스 전 국무부 부차관보가 외교분야에서 톰슨을 보좌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톰슨이 20년 이상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구축한 대중성도 상승세의 동력이다.

그는 영화.드라마에서 상원의원, 중앙정보국장, 백악관 비서실장 등 주로 공직자 역할을 맡았다. "할리우드는 고위 공직자 역이 필요하면 늘 톰슨을 찾는다"는 뉴욕 타임스(1994년 11월 12일자) 보도가 있었을 정도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쌓은 '톰슨=공직자'의 이미지는 그가 '제2의 레이건'이 될 수 있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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