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좋은 대학 만드는 비결은 자율·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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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해 대학 입시를 둘러 싼 정부와 대학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간단하게는 수능이냐 학생생활기록부(내신)냐를 놓고 벌이는 갈등이지만, 문제의 뿌리는 더 깊다. 신입생 선발 방식을 포함한 대학 운영 전반에서 대학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놓고, 대학이 최대한의 자율성을 누리면서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미국의 사정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뉴욕주립대 부총장과 메릴랜드대 총장을 역임한 조지 켈러의 '미국 최고의 대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박중서 옮김, 뜨인돌)는, 그렇고 그런 대학이었던 노스캐롤라이나 주 엘론대학이 1988년부터 꾸준한 혁신을 통해 미국의 많은 학생들이 선망하는 대학으로 발전한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엘론대학의 성공 사례를 교육의 질, 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복지, 교수진 관리, 재정과 시설 관리, 학교 운영진의 경영 마인드 등 다양한 측면으로 나누어 자세히 검토한다.

이 가운데 신입생 선발에 들인 노력이 엘론대학 성장의 주요인이었다. 입학 안내 및 학교생활 안내 자료가 다른 대학들보다 유달리 충실한 것은 물론, 입시생들에게 보내는 정보의 양도 월등히 많다. 입학처 직원들은 해마다 미국 내 30여 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설명회를 열고, 재학생, 교수, 학부모가 입시생 상담에 나서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렇게 노력하는, 아니 노력해야 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무려 3900여 개에 달하는 칼리지와 대학들 역시 더 많은 학생과 교수와 시설과 찬사와 재정적 안정을 얻기 위해 서로 악착같이 싸우고, 전략을 세우고, 경쟁해왔다. 이들은 고등교육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이 보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다. 경쟁에서 낙오된 학교는 문을 닫거나, 보다 입지가 튼튼한 다른 기관에 합병된다."

철저한 자율성과 경쟁적인 환경이야말로 대학이 창의성을 발휘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이것은 대학이라는 제도 혹은 기관의 역사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서양사학자 이석우의 '대학의 역사'(한길사)를 읽어보면, 서양 중세의 초기 대학들은 왕의 보호와 간섭을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제 해결을 위한 보호적 차원이었을 뿐, 선도적이거나 적극적인 보호와 간섭이 아니었다. 중세 이후 서양 대학은 국가나 교회에 속하지 않는 자주적 실체를 끊임없이 지향했다.

이석우는 대학의 자율을 이렇게 정의한다. "학위수여, 입학과 졸업, 교과 과목과 과정, 시험, 교육 내용 등에서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스스로의 규율에 따라 독립적으로 선택하고 시행할 수 있는 권리." 아울러서 이렇게 지적한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은 결국 지원자의 정책 요구를 고등교육에 침투, 반영시키게 되고 지원 자금을 쓰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결정들이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자율이 보장될 때에만 대학의 창조적 기능이 극대화되고 그 존립 이유가 정당화된다. 창조는 자유 속에서만 올바로 수행될 수 있다."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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