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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후보 부인 정기호여사(대선후보 내조24시: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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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각종 모임 찾아 “깨끗한 사람”강조/남편의 사후 시신기증은 평소신념/남녀평등 출발은 여성의 정치참여
『그분이 자신의 시신을 실험실습용 교재로 써달라고 연세대 의대에 기증하겠다며 가족동의서를 내밀었을때,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은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었으니까요.』
신정당 박찬종후보 부인 정기호여사(53)는 아무런 장신구 없이 쑥색계열의 모직재킷과 바지차림에 반지조차 끼지 않은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앉아 차분하고 나직한 소리로 말한다.
『처음에는 그분이 정치에 손대지 않기를 바라며 말리다가 그게 방해 밖에 안된다는걸 알고 지난 71년이래 힘닿는대로 열심히 도왔지만,이번에는 정말 출마하지 않기 바랐어요. 후보등록비 마련도 어려울 정도인데 무슨수로 선거운동을 하랴 싶었지요. 결국 대규모 유세장을 빌릴 여력도 없어 노상토론을 거듭하고 있지만,고맙게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해본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바쁜」 정 여사의 하루는 밤낮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박 후보의 보좌관이 도착하는 오전 7시까지 꿀을 넣은 찹쌀부침을 만들고 잣죽을 끓여 유자차·과일과 함께 차려내는 것도 정 여사의 일. 박 후보의 성대보호를 위한 유자차와 간식삼아 먹을 생밤을 까서 유세장으로 내보낸뒤,자신은 별도의 일정을 잡아 종교관계 주부모임·동참모임·친척모임 등 갖가지 모임을 찾아나선다.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지역구 출신 여성국회의원이 한명도 없잖아요. 여성이 공천·당선되기 쉬운 중선거구제로 바꿔 좀더 많은 여성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유난히 말 없고 얌전했다는 정 여사는 여성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여성들의 정치참여로 본다.
박 후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부인에게 의견을 묻고,자녀들의 전공학과 등은 각자 스스로 선택토록 하는 「민주적 가장」이라는 정 여사. 두딸에게 『너희 아빠같은 사람과 결혼한다면 걱정 않겠다』고 했다는 말로 30년을 함께 살아온 동갑내기 남편에 대한 평가를 대신한다.
『그분이 대통령의 꿈을 이룬다면 분명 이상주의자답게 근사한 일들을 해낼거라고 믿어요. 선거법을 바꿔 정치자금을 양성화 해서 진짜 깨끗한 정치판을 만들테고…. 유권자들에게 그런 뜻을 널리 알릴수만 있다면 문제없겠는데,비교적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과 지방유권자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비서도,운전기사도 없이 고군분투해온 정 여사는 미국 보스턴대 정치학과에 재학중이던 외아들 원곤씨가 최근 선거운동을 도우려고 달려오는 바람에 큰 힘을 얻었다며 흐뭇한 표정.
『이번 선거를 잘 치러 20년 넘게 선거를 치르면서 알게된 불쌍한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는 보람이겠지요. 그분이 지금까지 내게 보낸 편지글들을 정리해 책으로 펴내고,오랫동안 잊고 지낸 사진촬영 취미도 살릴 수 있는 시간도 갖고싶어요.』<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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