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의 거목 『이경순 전집』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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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상에 살면서도 사회나 제도에 발 들여놓지 못하고 공으로 살다간 시인 이경순(1905∼1985년)의 시 전집 『동기 이경순 전집』(자유사상사간)이 출간됐다. 동기가 태어나 평생 살았던 진주의 문인들이 엮어 펴낸 이 전집에는 발표 시 및 유고 시 총 2백46편, 시론인 「나의 시적 편력」과 함께 동기 시에 대한 연구논문 및 추모의 글 등이 실렸다.
돈키호테 같은 환상과 꿈으로만 살려고 아호를 「동기」라 했던 이경순은 지극히 평안한 삶이 보장된 일본의 치과 대학을 졸업하고도 진주에서 남강변을 거닐며 시를 쓰고 진주문단을 일구다만 갔다.
일본유학시절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운동에도 가담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던 동기의 시세계도 그의 삶만큼 공으로 가득 차 있다.
『높이를 겨누다가, 저렇게도/하이얀 목이 길었으랴/휘어진 소나무 가지에서/마음은 창공이 그리운데/두 날개로 날으고 날아도/구름 가는 저편은/멀고도 멀구나. (「학」전문)
이상이 가 닿을 수 없는 세계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위해 지상의 모든 제도를 억압적인 것으로 부정해 버렸던 아나키스트 동기의 시들은 대부분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학의 몸짓으로, 과녁을 향한 화살의 이미지로 남는다.
그러나 가 닿을 창공이나 과녁은 멀기만 하다. 가 닿을 수 없는 과녁을 향하는 것이기에 동기에게 있어서 시와 시 쓰는 행위는 공이며 무상의 행위가 된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과 이상, 지상과 천상 그 한가운데의 공에 거주하며 양극의 시위를 팽팽히 당겨 삶의 자유를 향한 긴장된 언어를 쏘는 자에 다름 아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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