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기 이례적인 인사/김일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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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일의 상공부 인사는 이례적이다. 정치적 보직대상이라 할 수 있는 장·차관을 빼고나면 직업공무원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1급공무원 5명을 느닷없이 자리바꿈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선거가 열을 더해가면서 잔여임기가 막바지에 이른 장관에 의해 이같은 「의욕적」인사가 주도됨으로써 더욱 의아스런 느낌을 갖게되는 것이다.
실무선과 장·차관을 연결하는 허리 역할을 하는 1급은 행정의 큰 물줄기를 잡아갈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는가 하면 무사안일하게 자리에 안주하기도 십상인 자리다.
상공부는 유난히 다른 부처와 협조사항이 많아 심한 경우에는 간부진의 「쌈닭」 역할 등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의 전격적인 인사는 상공부 1급들의 적극적 역할과 관련해 그동안 쌓았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는 해석이 우선 가능할 수도 있다.
한봉수상공부장관도 『상공부가 다소 흐트러져 있는 듯해 분위기를 쇄신키 위해 인사를 상신했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최근 상공부와 무역협회의 손발이 맞지않는 등 레임덕으로 보일 수 있는 현상들이 적지 않았다.
대우조선과 대우중공업의 합병강행여부 문제에서도 상공부는 선거를 앞두고 눈치없는 백지화주장을 한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번 인사는 또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독전을 해야하겠다는 장관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권말기 공직사회 기강해이에 경종을 울려야 하겠다는 정부 수뇌부의 뜻은 일면 이해할만도 하다. 그러나 돌연스런 이번 인사가 대통령이 참석한 무역의 날 행사(지난달 30일)때 애국가연주가 나오지 않은 실수와 시기적으로 일치해 뒷맛을 찜찜하게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때 3분동안 침묵속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있어야 했고 청와대측은 주관기관인 무역협회를 대상으로 경위조사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년 2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서게 돼있는 마당에 이처럼 느닷없이 고위직인사를 대규모로 단행한 것을 놓고 혹시 인사 히스테리로 오해하거나 더 나아가 정부수뇌부의 또다른 보신주의로 취급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권말기가 되면 공직사회는 가급적 크게 흔들리는 모양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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