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의 내주장(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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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체로 퍼스트 레이디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남편의 그늘밑에서 조용히 남편의 뒷바라지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주부형 퍼스트 레이디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활동형 퍼스트 레이디가 있다.
주부형 퍼스트 레이디로 가장 인상에 남는 여성은 드골대통령 부인 이본여사다. 그녀는 엘리제궁 안주인 시절에도 직접 시장에 나가 줄을 서서 가족들의 식료품을 사들고 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반면 사회활동형 퍼스트 레이디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부인 엘리노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로 있는 동안 여러가지 사회사업에 앞장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엘리노여사가 이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그녀의 능력과 헌신적인 사회봉사에도 있지만,미국 역사상 가장 긴 백악관 안주인으로 있으면서도 「내주장」으로 인한 말썽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클린턴 차기 미국 대통령 당선자 부인 힐러리여사의 앞으로의 역할과 활동이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90년 부시대통령부인 바버라여사가 매사추세츠에 있는 웰슬리 칼리지 졸업식에 초청받아 졸업생들에게 특별치사를 하게 되었다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이 학교 학생들이 여성은 그 스스로 지닌 인격과 자질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야지 남편의 지위로 평가받아서는 안된다고 처음엔 반대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힐러리여사는 이 학교 출신으로 재학시절에는 학생회 회장을 맡은 일도 있다.
그 힐러리여사의 지론인즉 여성에게는 가정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역할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클린턴은 지난 선거기간초반 「똑소리」가 날만큼 똑똑한 아내를 앞세우고 「한표로 우리 두사람을…」하는 득표전략을 세웠다가 「부부 공동대통령」이 될 참이냐는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에 선거전 후반에는 잠시 뒤로 물러 앉았던 힐러리여사가 클린턴이 당선된 지금 다시 전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클린턴도 부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능력과 역할의 조화를 이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대 우리의 퍼스트 레이디들 가운데 유독 육영수여사가 국민의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 이상의 역할을 자제했기 때문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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