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TV토론/3당 속셈달라 성사까진 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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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참가자 범위·진행방식 싸고 이견 팽팽/겉으론 “찬성” 돌아서면 “난색” 합의난항/관훈클럽식 초청토론 생중계 실현성 가장높아
선진선거운동기법으로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대통령후보들의 TV토론은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중앙선관위 유권해석에 따르면 TV토론은 우선 공정성을 지녀야하므로 여러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절차상 까다로운 관문들을 통과해야만 성사가 가능하다.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로 여겨졌던 방송사 임의의 특정후보자초청 TV토론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이 나와 실시될 수 없게 됐다. 또 방송사가 후보자 1명을 1회씩 불러 토론자와 토론 또는 대담하게 하는 것도 후보자나 후보자 지명의 연설원 2명이상이 참석,토론·대담해야 한다고 규정한 대선법에 어긋난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선관위는 TV토론을 주관하고자 하는 방송사는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후보자들에게 토론참가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단,불참하겠다는 후보는 제외하고,또 협의과정에서 특정정당·후보자간에만 토론하기로 한 경우에는 그 합의자간에만 토론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TV토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후보자들간의 협의·합의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나 후보자들이 과연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현재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자는 민자·민주·국민당 등 주요 3당의 후보를 포함해 12∼13명에 달하는 만큼 불참자 몇명을 제외하더라도 후보들간 완전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자금·조직력 등에서 3당 후보에 크게 뒤떨어진 군소후보들이 대중적 선전효과가 큰 TV토론을 마다할리 만무하므로 토론의 실효성문제를 놓고 후보들간에 언쟁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정토론시간은 2시간이내인데 후보들이 거의 참가하면 토론은 사실상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후보들의 합의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송사가 토론을 개최할 의향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각 후보들에게 서로 상대하기를 원하는 후보들을 고르도록 하는 「짝짓기」방식을 통해 공통분모에 가까운 근사치를 찾아내 참가자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식은 토론참가자로 결정된 후보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워 토론이 이뤄지더라도 이를 거부하는 후보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근사치가 몇몇 군수후보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도출되면 3당후보가운데 「격이 안맞아 토론에 참석 못하겠다」고 할 사람이 생길는지 모른다.
TV토론성사에 더욱 비관적인 것은 당장 3당후보간에도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세 후보 진영은 TV토론이 국민적 관심사인데다 후보의 자질·식견·이념 등을 노출하고 정책대결 유도로 공명선거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명분때문에 겉으로는 원칙적 수락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토론참가 후보자의 범위,토론진행방식 등 구체적인 실시방안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민자당은 김영삼총재의 토론대상과 관련,김대중민주당대표는 좋으나 정주영국민당대표는 양당사이에 의석수 차이가 너무 벌어져 격에 맞지 않은만큼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자당이 이같은 입장을 고집하는 것은 김 총재가 정 대표의 저돌적이고 생경한 인신공격성 발언에 곤욕을 치를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주로 여성향의 표를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 대표를 배제하고 양김대결을 유도한다는 전략에서다. 그러나 양김만의 토론이 결정되더라도 토론방식에 대해서는 김 총재측이 사회자나 패널리스트를 통한 질의·응답을 원하고 있는 반면 김 대표측은 후보끼리의 자유토론을 선호해 합의는 불투명하다.
민자당은 또 TV토론이 현장모면의 번드르르한 거짓말과 달변만 부각해 후보들의 실체를 그릇되게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삼총재는 『최근 얼마전 내한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가 나에게 TV토론은 후보들의 순간적인 재치,실수만을 부각시키고 전인격에 대해서는 판단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므로 영국에서는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다』며 절대 TV토론에 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더라고 했다. 김 총재측은 또 이번 미국대통령선거의 후보간 토론을 미국신문들도 비판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국민당은 민자당과는 달리 양김과 정,3자토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유인즉 국민들은 당선이 유력한 세후보가 자리를 같이해 기량을 겨루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TV토론에 가장 적극적인 민주당은 민자당이 끝내 양김토론을 고집할 경우 이를 수용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은 양김토론이 끝나면 국민당과도 1대 1 토론을 가져 김 대표의 식견과 달변을 한껏 과시한다는 계산이다.
국민당측은 특히 민자당이 정 대표를 제외하려는 것에 대해 「YS가 TV토론을 사실상 무산시키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한다. 국민당은 정 대표가 원고읽기는 서툴지만 순발력과 유머감각이 뛰어나 토론에는 적격이며 TV토론이야말로 정 대표의 왜곡된 이미지를 불식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3당의 속셈이 제각각인 만큼 세후보만의 TV토론조차도 성사되기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 사정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면 TV토론을 주관하는 방송사의 적극성도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지금 가장 실현성이 높은 것은 87년 대선때와 마찬가지로 중견언론인의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의 후보 개개인과의 토론을 TV로 중계하는 것이다. 선관위도 관훈클럽 토론을 언론 본연의 영역으로 유권해석해 TV토론의 길을 터놓았다.
결국 TV토론은 선거법이 지금처럼 그 실시에 대해 모호한 규정을 계속 존치하는한,즉 토론실시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참가자의 범위·토론방식·개최시기 등 구체적인 시행세칙을 마련하지 않는한 매끄럽게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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