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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발톱이 흔들거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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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붉은색의 공포'는 사라졌을까.

타이거 우즈(미국)가 또다시 우승 문턱에서 무너져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18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 오크몬트 골프장(파70.7230야드)에서 끝난 US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우즈는 2오버파를 쳐 최종합계 6오버파로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5오버파)에게 한 타 차로 우승을 내줬다.

우즈는 최종라운드에 선두로 나선 메이저대회 12개 대회에서는 모두 우승했지만 이번 대회까지를 포함해 선두가 아닌 상태에서 시작한 29개 대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역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기회는 많았다. 2타 차 2위로 선두 애런 배들리(호주)와 챔피언조에서 경기한 우즈는 배들리가 1번 홀에서 칩샷 실수로 트리플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쉽게 선두로 올라섰다. 한 번 기회를 잡으면 놓치지 않았던 우즈의 과거를 보면 여기서 경기가 끝나야 했다.

그러나 우즈는 3번 홀(파4)에서 경기를 망쳤다. 두 번째 샷을 그린을 넘긴 뒤 칩샷을 그린 반대편 러프로 보냈고, 이어진 칩샷도 짧아 2퍼트가 필요했다. 결국 더블보기로 선두를 카브레라에게 빼앗겼다.

팬들은 '최종라운드 붉은 티셔츠'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기대했다. 그러나 4월 마스터스에서처럼 우즈는 끝까지 팬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13번 홀(파3)에서 1.8m 버디퍼트를 놓치더니 15번 홀(파4)에서 또 2m 버디퍼트를 놓쳤다. 자신감이 없었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포기하는 듯한 인상도 보였다. 짧은 17번 홀(파4)에서는 과감하게 드라이버 티샷을 날렸으나 그린 옆 벙커에 빠진 뒤 버디를 잡지 못해 연장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31세의 우즈는 20대에 비해 근육이 훨씬 늘었고 샷이 안정됐으며 경험도 쌓였다. 그러나 10m가 넘는 거리에서도 클러치 퍼트를 구겨 놓고 포효하던 그 패기는 사라졌다. 12타 차(마스터스), 15타 차(US오픈) 역전 우승을 하던 젊은 시절의 기억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 언론은 '호랑이가 워터 해저드도 없는 코스에서 오리에게 잡혔다'고 비꼬았다.

뒤뚱뒤뚱 걷는다 해서 카브레라의 별명이 오리다. 15세 때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골퍼 에두아르도 로메로가 헤드 프로로 일하던 골프장에 캐디로 취직하면서 골프에 입문한 카브레라는 2001년 아르헨티나오픈을 제패하는 등 15승을 거뒀고, 세계랭킹 9위까지 올랐다. 2002년 브리티시오픈 공동 4위 등 메이저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냈지만 미국 대회에서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다 이번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2라운드까지 8오버파로 겨우 컷을 통과하더니 3라운드 2언더파, 4라운드 1언더파를 쳐 유일하게 2개 라운드 언더파 선수가 되면서 극적인 우승자가 됐다. 남미선수답게 다혈질에 술.담배를 즐기는 한량 스타일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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