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꿈 담은 모든 문학 지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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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학평론가 염무웅 씨가「진보적 문학론」을 폈다. 그는 근간『창작과 비평』(겨울호)에 실린 평론「50, 60년대 남한문학의 민족 문학적 위치」에서 이데올로기에 편향되거나 타락·부패·물질주의에 사로잡힌 문학을 배격하면서 인간의 본연을 그려내는데 힘을 기울이는 작품들이야말로 진정한 진보적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염씨는 이 글에서 특히 서정주의 시를 극찬하고 있어 주목된다. 염씨는『오늘의 상황에서「진보성」의 내용 자체는 새롭게 검토돼야 한다』며 『타락과 부패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오늘, 인간의 오랜 꿈에 의지하여 청정한 삶을 찾아 애쓰는 모든 태도를「진보적」이라 불러야한다』고 논의를 펼쳐나갔다.
70년대 이후 문학의 현실 참여를 강조하며 일기 시작한 리얼리즘은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문단의 중심부로 떠올랐다. 시·소설 등 창작이나 평론·문학연구분야를 이끌던 리얼리즘은 그러나 일제 또는 해방직후의 사회주의 문학, 북한문학 등에 편향성을 보여왔다. 특히 우리의 근·현대문학을 골고루 연구, 민족문학의 총체적 위상을 정립해 나가야할 국문학계에 이러한 편향이 심하다는게 염씨의 지적이다.
염씨는『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믿어져왔던 사회주의가 현실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일체의 이념적 지표들이 덧없는 표류상태에 빠짐에 따라 추구할만한 이상으로서의 인류의 꿈이 도리어문학에서 간절히 요청된다』며 추구할 만한 이상으로서의 인류의 꿈을 담은 모든 문학을 진보적 문학의 틀로 잡았다. 이러한 확대된 진보적 문학의 틀로 염씨는 그 동안 실존주의·허무주의·반공문학 등으로 치부돼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았던 50, 60년대 문학을 살피며 특히 서정주의 시적 작업을 최대의 성과로 떠올렸다.
『서정주 시선』『신라초』를 50년대 시들 가운데 유일하게 훌륭한 성취를 이룩한 시집이라 평가한 염씨는『서정주의 절창이 발하는 광휘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오류에 대해서조차 우리를 눈멀게 한다』며 진보적 문학 진영의 평론가로서는 최초로 미당의 시적 성취를 인정했다.
염씨는『숨막히게 노련한 언어구사,「민중의한」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감정상태의 기막히게 절묘한 재현능력은 서정주의 명성이 과연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케 하는 것』이라고 극찬하며 민족문학론의 일관된 논리 안에서 그의 승리와 패배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염씨는 50년대 반공 냉전 상황아래서『무엇에 대하여 저항하는가』『현대작가의 책임』『저항으로서의 문학』등 참여문학론을 발표하며 비평가그룹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던 이어령씨의 성과를『일관된 입장이 없다』고 비판했다. 염씨에 따르면 이씨의 평론집들은 현란한 수사법과 우상 파괴적 문체로 독자들을 파고들었지만『외래어와 외국어의 남용, 영어·불어문장의 불필요한 원문 인용 등으로 민족전통에 대한 모멸감을 심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문학진영의 주요 평론가 염씨의 이 같은 진보적 개념확장과 그에 따른 50, 60년대 문학의 조명은 90년대 들어 날로 기세를 더해 가는 상업 문학에 대한 본격문학의 엄격하고 철저한 한 대응자세로도 읽힐 수 있다. 이제 순수냐 참여냐, 보수냐 진보냐의 대립을 떠나 추구할만한 이상을 지향하는 모든 본격문학은 성·향락 등을 상품화한 상업문학, 외래 사이비 문학 등에 본격 대응해야 한다는 문단 일반의 각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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