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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황세희의몸&마음] 당신도 돈 중독 '쩐의 전쟁' 중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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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쩐의 전쟁'이 세간의 화젯거리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채업자에게서 빌린 급전을 못 갚아 협박에 시달리거나 신체 포기각서를 쓰는 참담한 일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급기야 한 정당이 나서 '신체 포기 각서는 법적으로 무효'라는 불법 사채업 피해 대응 방법을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거액의 출연료에 혹해 '무이자~'를 외치며 대부업체 광고에 나섰던 유명 연예인들도 여론의 포탄을 맞고 하나 둘씩 광고 출연을 자제하고 있다.

'쩐의 전쟁'은 부자들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재벌가에서 가족간 재산 다툼이 법정 소송으로 번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엔 유명 기업 창업주의 장례식장이 농성장으로 돌변하는 일도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상품이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노동력 역시 상품화된다. 돈을 추구하는 행위가 당연해 보인다. 사람의 가치를 '몸값'으로 측정하기도 하고, '몸값 올리는 법'이 책이나 강연 제목으로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돈이 삶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목적'으로 추구될 땐 '돈 중독'으로 봐야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중독은 마약.알코올 등 '물질 중독'과 도박.인터넷.돈.권력 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행동 중독'으로 분류된다. 중독은 동일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선 점점 강한 자극이 필요한 '내성(耐性)'과 중독 대상을 끊으면 불안.초조감을 보이는 '금단(禁斷)증상이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뇌에서 보상 중추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흡수된 알코올이 뇌에서 감지되면 도파민이란 물질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진다. 이때 대뇌는 이 느낌을 기억해 같은 경험을 계속 갈망하게 만드는 보상회로를 작동시켜 중독 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렇다면 특정 물질이나 행동을 접하면 누구나 중독에 빠지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도파민은 똑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포만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는 속성이 있다. 맛난 음식도 자꾸 먹다보면 다른 먹거리를 찾게 되는 이유다. 중독은 도파민이 특정 자극에 대해 포만감을 못 느끼고 끝없이 원하는 상태다. 술도 보통 사람은 몇 잔으로 들뜬 기분을 맛보다 과음으로 괴로운 경험을 하면 자제한다. 반면 알코올 중독자는 술 때문에 가정과 사회에서 곤란을 겪고 병까지 들어도 끊임없이 술을 찾는다. 돈의 추구 역시 마찬가지다. 실생활에 필요한 액수보다 지나치게 큰 목표를 설정하거나, 목표했던 액수를 얻고도 불안감을 느끼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추구한다면 이미 중독에 빠진 셈이다.

물질이건 행동이건 일단 중독 상태가 되면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벗어나기 힘들다. 이미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돼 본인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독 치료의 첫걸음은 본인이 중독 상태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또 치료를 위해 주변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단 본인이 문제를 인식했다면 전문가와 함께 내재한 우울증은 없는지, 돈에 대한 갈망이 심해지는 상황, 자신의 인생 목표, 취미 생활 등을 분석하고 돈 이외의 대상에서 기쁨을 얻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그래야 금전 만능사회의 '쩐의 전쟁'에서 해방되고,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다.

황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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