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B, 옛 KGB보다 세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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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06면

역시 KGB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GRU)에 들러 권총 사격을 하고 있다. 푸틴은 1998년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부(FSB) 총수에 임명되고 이어 권력을 장악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1일 낮 런던 시내 일급호텔인 밀레니엄호텔 파인바.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부(FSB)의 전직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FSB 동료였던 안드레이 루고보이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는 루고보이와 헤어진 직후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210 중독 증상을 나타냈고, 3주 후 장기가 모두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가 마신 찻잔에서는 폴로늄이 검출됐다. 리트비넨코는 숨지기 전 암살명령을 내린 사람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지목했다. 사건 직후 루고보이는 서둘러 러시아로 돌아갔다. 루고보이 일행이 들렀던 런던 시내 수십 곳 모두에서 폴로늄 흔적을 찾아낸 영국 경찰은 그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 지난달 22일 러시아 당국에 범인 인도를 요청했다. 폴로늄은 전 세계 공급량의 97%를 러시아가 공급하는 물질이다. 러시아 당국의 협조 없이 전직 정보요원 한 사람이 밀반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냉전 회귀하는 러시아

KGB 시절 많이 들어본 스토리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과거보다 한결 추악하고, 냉혹하고, 정치적인 실타래가 뒤엉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KGB가 사라진 지 15년여가 지났지만 FSB로 이름을 바꿔 단 그 조직의 생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FSB의 재등장은 푸틴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푸틴이 대통령이 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정치적 배경으로 암살당한 사람만 30명 가까이 된다. 하나같이 푸틴 반대 진영에 가담한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크렘린의 부패와 체첸 사태 등 푸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사람들이다. 체첸 인권유린을 줄기차게 보도하던 여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가 모스크바 시내 자기 아파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것도 리트비넨코가 폴로늄이 든 차를 마시기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1999년 9월 러시아 남부 도시 볼가돈스크 아파트에서 발생한 차량폭탄 테러의 참혹한 현장. 중앙포토

FSB의 비밀생리를 이해하는 데는 짚어야 할 몇 가지 단서가 있다. 푸틴의 등장 미스터리와 함께 체첸 사태, 부패, 마피아, 그리고 정치적 암살을 당연시하는 조직 생리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핵심 열쇠는 바로 푸틴의 등장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리트비넨코는 1999년 푸틴의 등장을 전후해 모스크바 시내에서 일어난 연쇄 폭탄테러가 체첸 반군 소행이 아니라 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푸틴을 권좌에 앉히기 위한 FSB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하고 다녔다. 그의 죽음은 그때 이미 예약돼 있던 셈이다.

두 얼굴의 유셴코 2004년 반(反)러시아 기치를 내걸고 대선에 출마한 뒤 다이옥신 중독 증세를 보인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얼굴. 그해 4월 카메라에 잡힌 수려한 용모(왼쪽)와 11월 중독 증세를 보인 뒤 오렌지 껍질처럼 변한 피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중앙포토

1998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당시 무명의 정보요원 푸틴을 FSB 총수로 임명한다. 알코올 중독 증세와 심장병, 측근 비리혐의로 인기 최악의 상태에 있던 옐친으로서는 그를 후계자로 삼아 퇴임 후를 보장받으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99년 8월 8일 푸틴은 총리로 지명됐고, 그리고 곳곳에서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첫 폭발음은 같은 달 31일 모스크바 시내 쇼핑몰에서 울렸다. 한 명 사망에 40명 부상.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17일 동안 5건의 폭탄이 더 터졌고 모스크바 시내와 러시아 남부에서 아파트 건물들이 폭탄 테러로 줄줄이 내려앉으며 수십 명이 희생됐다.

증거는 없지만 테러 배후는 하나같이 체첸 분리주의자들로 지목됐다. 체첸인들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러시아는 체첸 재점령에 나섰다. 99년 9월 2차 체첸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러시아군은 푸틴의 지휘 아래 1차 전쟁 때보다 더 많은 전과를 거두었고 푸틴의 인기는 최고조로 올라갔다. 그해 12월 31일 옐친의 극적인 사임 발표가 나오고 푸틴 총리가 대통령 서리로 취임했다. 푸틴은 옐친과 그의 가족들이 부패 혐의로 기소되지 않도록 사면조치를 단행했다. 푸틴은 2000년 가을로 예정돼 있던 대선을 3월로 앞당겨 실시해 손쉽게 승리하며 크렘린의 주인이 됐다.

푸틴 등장의 미스터리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99년에 일어난 일련의 폭탄테러 사건이 푸틴을 권좌에 앉히기 위한 FSB의 작품이라는 논리를 편다. FSB가 주도한 쿠데타라는 것이다. 실제로 FSB 요원들이 사건 현장에서 수사경찰의 손에 잡힌 경우도 있지만 모두 유야무야 처리됐다. 2000년 취임한 푸틴 대통령은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정보기관 역할 강화를 더 세차게 밀어붙였다. 푸틴의 권력은 FSB에서 나온다고 비판자들은 말한다.

‘실로비키(보안기관 출신)’라고 불리는 전직 KGB, FSB 요원 6000여 명이 현재 크렘린, 의회, 국영기업, 정부부처의 요직에 그물망처럼 파고들어 푸틴 권력의 버팀목 역할을 하며 소위 ‘자본주의 경찰국가’라는 희한한 국가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정ㆍ관계의 요직 인사 1016 명 중 78%가 KGB, FSB 출신이다. 역사상 선례가 없는 일이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부총리 겸 국방장관, 블라디미르 야쿠닌 철도공사 사장, 이고리 세친 대통령부 부장관, 세르게이 스테파신 감사원장,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상공회의소장, 아나톨리 사포노프 내무부 제1차관보 등이 대표적인 FSB 출신 인사다. 내년 대선에서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안보분야 총괄 이바노프 제1부총리와 경제분야를 책임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도 FSB 출신이다.

정보인원 50만 명 추산
현재 러시아 정보기관은 국내분야를 담당하는 FSB와 해외 정보업무를 수행하는 SVR로 크게 나뉘어 있다. 과거의 ‘공포 제조공장’ KGB가 둘로 나누어진 것이다. FSB는 91년 여름 성난 군중에 의해 끌어내려진 제르진스키 동상이 서 있던 루비얀카 광장의 옛 KGB 본부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제르진스키는 1917년 체카(반혁명 태업진압특별위원회)를 창설했고, KGB는 54년 체카를 모태로 공식 출범했다.
체제 붕괴의 격변 속에 KGB는 지난 91년 해체되고 이듬해 FSB로 새 출발한 이후 수차례 개혁의 메스가 가해졌다. 하지만 푸틴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개혁이라고 하기보다는 조직 및 권한 확대가 이루어져 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특히 9ㆍ11사태 이후에는 국내외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FSB를 중심으로 권한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2003년 3월에는 국경수비대(FPS), 통신정보국(FAPSI)으로 분리돼 있던 조직을 모두 FSB로 통합시키며 확대개편을 단행했다. 감청과 국가통신망을 관리하는 FAPSI 기능까지 흡수하며 FSB는 국내정보를 모두 관장하는 거대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2004년 7월에 단행된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의 6개 총국과 2개 국 등 8개 주요 부서를 실 단위로 격상시키고 니콜라이 파트루세프 부장을 유임시키며 부장 직급도 연방 청장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시켰다.

스파이 업무는 SVR(과거 KGB 제1국)이 맡고 있지만 FSB도 해외 전자감청 업무를 하는 FAPSI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옛 소련 연방 영토 안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한다. 아울러 최근 채택된 테러법에 따라 FSB 지휘 아래 러시아 군병력이 해외에서 대(對)테러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게 됐다.

FSB 예산과 인원 규모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가안전보장국(NSA), 해안경비대, 마약단속국, 세관 등의 기능을 합친 것과 유사한 규모로 보면 된다.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거의 40%에 달하는 예산 증액을 단행했으며, 92년 기준으로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체키스트(정보기관원)의 수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소련 시절 국민 428명을 KGB 요원 한 명이 통제한 반면, 지금은 297명을 FSB 요원 한 명이 맡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푸틴식 ‘강한 러시아’ 정책이 지속되는 한 FSB의 권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수사당국이 리트비넨코 살해 혐의로 루고보이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 당국이 거부하고 있어 송환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영국-러시아 경제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 사건이 양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대외관계에 그대로 나타날 가능성이다. 우크라이나ㆍ벨로루시ㆍ그루지야ㆍ아제르바이잔 같은 옛 소연방 공화국과 과거의 위성국들은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 그리고 군사력을 무기로 언제든 ‘완력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내지 못한다. 이들은 지금도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때 반러시아 노선을 내걸었던 당시 야당 후보 빅토르 유셴코의 일그러진 얼굴을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다.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이옥신 중독으로 오렌지 껍질처럼 변한 그의 얼굴은 KGB의 망령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새해 첫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하며 ‘가스 전쟁’을 일으켰다. 이를 통해 푸틴은 러시아가 언제든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지난 수년 동안 특히 9ㆍ11 테러 이후 지속되고 있는 서방과 러시아의 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권이 보다 문명화ㆍ선진화되고 있다는 징표는 찾아보기 힘들다. FSB의 무소불위는 과거 KGB 시절 ‘국가 안의 국가’로 위세를 떨쳤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를 직접 통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위세는 70%에 육박하는 푸틴 대통령의 인기와 더불어 당분간 견제받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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