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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반돌이가 '미련 곰탱이'라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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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련 곰탱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합니다."

지난달 17일 보호시설을 탈출한 지리산 반달곰 '반돌이'(사진)가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관리팀을 40일째 따돌리고 있다. 관리팀이 마지막으로 반돌이와 맞닥뜨린 것도 20일이나 지났지만 지금껏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5일 관리팀과 반돌이의 1차 접전은 반돌이의 압도적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피아골 대피소에 곰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접수한 관리팀은 생포 덫을 설치하고 이틀간 주변에 잠복했다. 반돌이가 2일부터 사흘 연속 쌀통을 훔치는 것을 확인한 수색팀은 5일 밤을 D-데이로 잡고 마취총으로 무장한 수의사를 비롯, 19명이 쌀통 부근을 지켰다.

반돌이가 쌀통에 쉽게 접근하도록 쌀통 쪽에 움막 비닐을 열어 통로를 만드는 등 나름대로 머리를 썼지만 오히려 허를 찔렸다. 반돌이가 열려 있는 통로 대신 사각(死角) 방향으로 접근해 '수고스럽게도' 쌀통 주변 텐트를 다시 찢은 것이다.

수색팀이 마취총 발사를 위해 랜턴을 켜자 반돌이는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한 순간의 일이었다. 불빛을 보고도 멍청히 있다가 30분 만에 잡히던 예전의 반돌이가 아니었다. 반돌이는 훔친 쌀통을 한 발로 안아 수백m 떨어진 인기척 없는 곳으로 달아나 여유있게 식사를 하고 용변을 보기도 했다.

한상훈 관리팀장은 "놈은 안 보는 척하면서도 항상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가 완전히 당했다"고 고백했다.

반돌이는 미련하기는커녕 아주 명석한 수준이다. 벌통에서 꿀을 훔칠 때는 벌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양봉업자가 벌통 속에 넣어둔 설탕물 그릇을 먼저 끄집어낸다. 이렇게 하면 벌들이 밖으로 나와 유유히 꿀을 훔칠 수 있기 때문이다.

韓팀장은 "35개월 된 반돌이의 이 같은 행동방식은 5~6세 유아 수준"이라고 말했다.

농가에서 사육되다가 자연적응 실험을 위해 지리산에 방사된 반돌이는 지난달 17일 땅굴을 파고 우리를 탈출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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