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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이 쿨해진다 ‘Summer Wine’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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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23면

여름 와인 3선. 왼쪽부터 프랑스 보르도산 화이트 와인 ‘샤토 카르보뉴 2004’와 샤토 디켐 2001’, 독일 모젤산 아이스와인 ‘베른카스텔러 독토르 리슬링-아이스바인 2001’.

오 헨리의 단편소설에서 상류계급인 척하는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샴페인 글라스에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요.” 남자가 묻는다. “샴페인은 병을 차갑게 해서 마시는 것 아닌가요?” 정답은 남자가 말했다.
그러나 차가운 와인병에 맺힌 물방울,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기포를 떠올리면, 얼음을 만진 듯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12도에서 18도 사이를 적정 온도로 치는 레드 와인과 다르게 샴페인과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은 차갑게 마신다. 바람마저 죽어버린 열대야라고 해도 굳이 맥주만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로제 와인은 마셔본 적이 없고, 샴페인은 너무 비싸다고 여기는 이들이라면 화이트 와인으로 한여름 와인 기행을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다.
‘샤토 카르보뉴 2004’는 소비뇽 블랑에서 오는 신선함과 세미용에서 오는 우아함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적당한 볼륨감과 산뜻한 산도가 기분 좋은 와인.
벌꿀보다도 당도가 높은 ‘샤토 디켐 2001’은 달콤한 첫 모금을 삼키면 신맛으로 되살아나 여름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활짝 피어오르는 독특한 귀부 포도의 향과 신선함이 혀와 목구멍을 새롭게 하고, 금세 건조해진 혀는 다음 잔을 부른다.
이름부터 시원한 아이스 와인은 차갑게 마실 뿐만 아니라 그 태생 또한 차가운 와인이다. 홍정화 소믈리에의 표현으로는 “얼어붙은 한 송이 포도의 향연!”
‘베른카스텔러 독토르 리슬링-아이스바인 2001’은 한여름의 피로를 모두 풀어줄 만큼 당도와 산도가 높고, 신선한 열대과일 향이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와인의 농축도 또한 환상적이다. 화이트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로는 ‘세비체’가 있다. 전채로 내놓은 ‘세비체’는 소금과 화이트 와인 식초에 가자미를 매리네이드하고 올리브 오일과 다진 샬럿, 딜을 뿌린 다음 캐비아와 무화과 드레싱을 올리는 요리다.
적당히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맛보았다면 굳이 가을을 기다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나 스페인의 작은 술집에서 직접 만들어 항아리째 내놓는 시원한 로제 와인을 마셔보았던 이라면 더더욱 잊고 있던 추억에 사로잡힐 터. 그런 이들을 위해 신라호텔 소믈리에 여섯 명이 여름에 즐길 만한 와인을 추천해주었다. 이 상큼한 리스트에는 물론 레드 와인도 포함되어 있다. 

상큼한 청량감의 샴페인
청량감으로 따지자면 샴페인 이상의 와인은 없다. 지나친 청량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면 ‘볼린저 스페셜 퀴베’를 추천한다. 사과ㆍ배ㆍ생강ㆍ재스민ㆍ말린 과일향 등이 부드럽게 다가와 캐러멜 같은 진한 끝맛으로 연결되는 묵직한 샴페인이다. ‘살롱 블랑 드 블랑 르 멘실 1996’도 다른 샴페인보다 풀 보디한 와인. 8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거쳐야만 출시되는 ‘살롱’은 과일향이 풍부하기로 이름이 높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와인은 샴페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돔 페리뇽’이다. ‘돔 페리뇽 로제 1996’은 잔에 채워지는 순간 매혹적인 핑크빛 거품이 퍼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상큼한 과일향과 베리 특유의 향긋함을 만날 수 있어 연인과 휴양지에 온 듯 설레는 기분을 선물하는 와인이다. 샴페인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캐비아(철갑상어 알). 캐비아 자체만으로도 좋지만, 거기에 삶은 달걀ㆍ양파ㆍ차이브ㆍ참치 아가미 살 등을 다져 만든 콘디멘트(양념)를 곁들여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빛깔의 레드 와인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보르도는 기후와 지형과 포도 품종뿐만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온 양조 기술도 뛰어나 숱한 특급 와인을 생산해온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샤토 라투르’는 1급 와인 생산지로 명성 높은 포이약 마을에서 생산되는, 깊고 풍부한 향과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는 와인이다. ‘샤토 라투르 2000’은 입 안 가득 힘차면서도 유연하고 정제된 떫은 맛이 퍼지며 긴 여운과 예외적인 순수함을 보여준다. 그 집중도는 굉장하다고 할 만하다. 묵직하면서도 한결같이 시원한 나무 그늘 같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역시 보르도 와인인 ‘샤토 카농 1996’은 타닌 농도가 적어 끝맛이 길지 않다. 여름 저녁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 여기에 곁들이기엔 역시 스테이크만 한 요리가 없다. 부드러운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에 페리구 소스와 먹음직스럽게 익힌 채소를 푸짐하게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품격 있는 테이블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여름에 어울리는 로제 와인
차갑게 마시는 로제 와인은 한여름에 어울리는 와인이다. 맑고 상큼한 빛깔 때문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기에도 좋은 로제 와인 중에서 ‘도메인 오뜨’는 명품으로 꼽힌다. ‘도메인 오뜨 방돌 로제 2004’는 강렬한 햇빛을 받고 자란 프로방스 지방 포도로 만들어 상큼하면서도 로제 와인답지 않게 중후한 느낌을 풍긴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연어 요리는 맛의 궁합은 물론이고, 그 색깔만으로도 로제 와인과 꽤 잘 어울린다. 크레송과 마늘 드레싱을 넣어 만든 리조토 위에 15분 정도 소금으로 매리네이드하여 익힌 연어를 올리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조금 모험적인 느낌의 로제 와인을 원한다면 ‘보레브 타벨 로제 2005’를 추천한다. 그르나슈 포도 특유의 조금은 강한 향신료 향이 나면서도 체리 브랜디와 카카오와 무화과 향이 부드럽게 다가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이경희 ‘대유와인’대표 추천 와인과 함께하는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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