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소버린에 '일단 판정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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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SK그룹과 외국인 대주주인 소버린의 경영권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소버린이 SK그룹 지주회사 격인 SK㈜의 주식을 사모으자 SK그룹은 채권은행 등을 '백기사'로 내세워 맞섰다. 소버린이 다시 보유 지분을 자회사로 분산시켜 SK㈜의 외국인 투자 기업 자격을 박탈하려 하자 SK그룹은 일본 기업을 끌어들여 방어에 나섰다.

이로써 양측의 우호세력 확보전은 일단 SK그룹이 판정승을 거두고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년 3월까지 어느 쪽이 외국인 및 소액주주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는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

◆SK 자사주 매각 성공=소버린의 지분 매집에 맞서 SK 측은 SK㈜가 보유하고 있던 10.41%의 자사주 매각에 나섰다. 자사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우호세력에 넘기는 방법으로 의결권을 늘려야 했다. 이 중 7%는 지난 22일 백기사를 자청한 채권은행에 넘겼다.

나머지 지분을 사줄 백기사를 찾던 SK그룹은 주주명부 폐쇄 시한인 26일 증권거래소에 자사주 매각 신고를 했다. 이날 SK㈜는 시간외 대량 매매로 남은 지분을 매각했으나 0.74%는 팔지 못했다. 다만 이는 나중에 스톡 옵션으로 처리할 수 있어 의결권 확보에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이로써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계열사 등이 보유한 SK㈜ 지분 15.93%▶우리사주 4.3%▶우호적 기관투자가 4.9%▶자사주 매각분 10.41% 등 총 35.54%의 의결권을 확보했다. 반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표대결을 통해 이사진 교체를 추진 중인 소버린 측은 크레스트증권 등 자회사 지분 14.99%와 소버린과 입장을 같이하는 헤르메스(0.7%).템플턴(5%) 등을 합쳐 20.69%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외국인 투자 기업 자격 논란=SK그룹이 채권은행을 끌어들인 뒤 방심하자 소버린은 지난 24일 SK그룹의 허를 찔렀다. 소버린이 보유 지분 14.99% 중 12.03%를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4개의 계열사로 분산시켜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외국인 대주주의 지분율이 10% 미만이 되면 SK㈜는 외국인 투자 기업 자격을 잃는다. 이 경우 그동안 외투기업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계열사의 출자총액 제한을 받지 않았던 SK㈜도 이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당장 SK㈜의 지분을 보유한 ▶SK C&C(지분율 8.63%) ▶SK건설(3.39%) ▶SK케미컬(3.28%) 등 3개 계열사의 지분 9.45%는 의결권을 박탈당한다. 다급해진 SK그룹은 일본 기업을 끌어들였다.

일본 이토추상사와 다이오오일컴퍼니 등 두 회사가 SK㈜ 주식 0.5%와 0.25%씩을 매입한 뒤 24일 산업자원부에 외국인직접투자 신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두 회사는 SK㈜의 정유를 4년간 거래하기로 장기 계약한 관계사다.

◆외국인.소액주주 향배가 관건=현재 남은 세력은 외국인(28.33%)과 국내 소액주주(21% 안팎)다. 이 중 외국인 지분 상당수는 소버린 측이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SK그룹이 내년 3월 표대결에서 이기려면 소액주주를 얼마나 잡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경민.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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