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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글과컴퓨터사」한글 개발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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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의 젊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척자인 빌게이츠(36)-. 허름한 창고에서 큰돈들이지 않고「MS-DOS」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10년만에 미국의 대기업 IBM까지도 쩔쩔매게 한 컴퓨터천재.
국내에서도 최근 몇몇 사람들이「한국의 빌게이츠」로 극찬 받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글과컴퓨터사「한글」개발 팀의 골수멤버 이찬진·김형집·우원식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지난 89년 이들이 학생 신분으로 개발한 한글이 워드프로세서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뒤 지금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 내놓은「한글 2.0」 은 한달여만에 1만3천여개가 공식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한글이 한글기계화의 첨병인 한글워드프로세서인데다「하나뿐인 으뜸가는 글틀」이라는 의미를 갖는 등 이들이 한글을 유달리 사랑한다는 것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
가난하지도, 부자도 아닌 집에서 태어나 1등만 고집하던 학생도 아니었던 이찬진 한글과컴퓨터사사장(27)은 서울대공대 (기계과85학번) 재학시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시험때만 벼락공부를 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아 방위병으로 군 복무했고 우연히 한글을 개발했다고 겸연쩍어 했다.
김형집씨(25·개발실장)는 서울대공대(전자과86학번)에 들어간 뒤 1년여 동안 컴퓨터하드웨어에 더 관심이 많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게임을 좋아했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글의 버전업이 늦어지면 김씨가 게임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중요하고 귀찮은 작업은 독차지하는 우원식씨(24·연구원) 도 남다를 바 없는 서울대 공대생(제어계측과87학번)이었다.
우씨는 아직도 모든 스폿라이트는 선배들에게 넘기며 취재에 응하지 않고 어디론지 사라져버리는 수줍은 젊은이다.
지난 88년 겨울 세 사람이 서울대서클인 컴퓨터연구회에서 만나 한글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자고「도원결의」를 하면서부터 한국의 빌게이츠를 향한 집념이 시작됐다.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 모이며 밤낮으로 연구하던 이들은 이듬해 4월 어느 날 이씨의 집에서 화면에「한글」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5분여 동안은 적막 속에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을 정도로 기뻤다고 이씨는 당시를 기억한다.
한글은 기존 워드프로세서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해 지금까지 폭발적인 보급과 아류격의한글워드프로세서들의 출현을 야기시켰다. 지난 90년 10월 9일에는「한글유공 국무총리표창」 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런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불법소프트웨어로 인한 절망감은 이들에게 직업으로서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하느냐는 갈등을 남겼다.
특히 이씨는 빌 게이츠처럼 돈방석에 앉기는커녕 일부 업자들의 무절제한 복사본이 컴퓨터시장에서 난립하는 것을 보면서 군대에 입대해버렸다.
그러나 이들은 90년 11월 군복무중인 이씨의 주도아래 다시 만나 자본금 5천만원의 말한(주)한글과컴퓨터사를 한글 문화원(서울 와룡동)3층 한 귀퉁이 네평짜리 사무실에 차려 새출발했다.
지난 9월에는 서울 성내동에 신축된 6층 짜리 건물의 4개층(1백40평)을 월세로 빌려 사무실을 옮기고, 사원이 40여명으로 늘기까지 이들은「한국의 빌게이츠라는 희망 속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불법복제라는 좌절을 헤쳐왔다.
2.0버전까지 오는 동안 언론의 스폿라이트 등은 이들에게 명성은 주었지만 결코 실속은 챙겨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간혹『빌게이츠도 이런 환경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한글과컴퓨터사는 여느 회사와는 달리 책꽂이 대부분이 소프트웨어박스로 가득 차 있다. 소프트웨어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해야한다는 철칙 때문에 시스팀 구입 시 어쩔 수 없이 내장돼있던 소프트웨어들의 정품을 뒤늦게 숫자에 맞게 사 뜯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아 놓고 있다.
현재 한글 개발 팀은 2.0을 개발하면서 이들 이외에 박흥호(29·개발지원실장·부산대사범대 국어교육과 졸), 정내권(25), 양왕성(25·성균관대 수학과 졸), 김지수(22·여·연세대 국문과 졸)씨 등 4명이 더 의기투합했다. 메인 프로 그램을 담당해 가장 고생하는 우씨와 입·출력부분을 담당하는 김형집씨, 전체설계·기획·대외업무 등을 맡고 있는 이사장이 골수멤버라면 나머지 네 사람은 소프트웨어로 한글사랑을 실천하려는 애국자(?)들.
그래서 이들은 2.0버전에서 엉터리 한글을 남용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한글맞춤법을 바로 가르쳐주는「스펠체커」(Spell Checker)를 추가해 주었다, 이들은『하루 수백통씩 걸려오는 고객 문의 전화중 확인절차를 거치면 대부분이 복사본 사용자로 드러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내년 1월에는 유틸리티·팩스기능 등을 추가 향상시켜 2.1버전을 개발하고, 내년 말에는 386이상의 시스팀용으로 그래픽방식이 가능한 3.0개발을 완료한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다 .(이원호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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