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사라·로데오를 청산하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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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휴거난동과 「사라」소동을 거쳐 로데오 거리의 오렌지족이 벌이는 해괴한 행태를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다.
명백한 허구인 시한부 종말론에 휘말린 광신도가 수천 수만에 이르렀지만 기성교단이나 사회는 이들을 설득하거나 수용할 자정능력을 갖지 못했고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방치했다. 문제의 목사를 구속하고 경찰의 삼엄한 경계속에서야 휴거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문학을 위장한 포르노소설」을 놓고 문학과 외설의 시비가 붙더니 급기야 검찰은 작가를 구속했다. 섹스의 개방이 곧 문화의 선진화를 뜻한다는 작가의 논거도 후진적이지만 이를 알면서도 대중매체들은 바로 그 작가를 부추기고 그의 외설성을 상품화하여 「인기작가」를 만드는데 다투어 기여했다.
자정이 넘어서 고급 승용차를 몰고 고급 레스토랑과 록카페를 드나들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서로 뜻이 맞으면 밤을 지새는 청소년들,이른바 오렌지족이 신촌과 방배동을 거쳐 압구정동에 널려있다는 보도가 나와서야 경찰과 구청은 단속에 나서고 업주들은 피킷을 들고 퇴폐추방운동에 나서고 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한 사람의 목사가 있다고 해서 수만의 광신도가 생기고 이것이 사회불안 요인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전체의 자정능력이 전무함을 뜻한다. 우리 스스로 이를 개탄하고 부끄러워 해야 한다. 문학이 아닌 포르노소설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신문과 방송에 뻔질나게 오르내릴 수 있게끔 방치했던 우리 문화풍토의 후진성도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식 음식에 일본식 의상과 일본식 노래에 맞춰 밤을 지새는 업소를 만들어 청소년을 유인하고 이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게끔 무방비상태로 내버려둔 기성세대들이 바로 로데오 거리를 만들고 오렌지족을 만든 장본인이다.
한 사회 공동체를 이끄는 힘이 법과 경찰이어서는 안된다. 휴거·사라·로데오 증후군을 청산하려면 자율과 자정이 공동체의 힘으로 배양돼야 한다. 내 가정 내 마을 내 사회를 공동체의 자율적 힘으로 정화시킬 수 있는 자정능력을 우리 스스로 키우지 않고서는 휴거와 사라와 오렌지족은 언제 어디서나 독버섯처럼 생겨날 것이고 그 독은 우리공동체 전부를 무너뜨리는 공룡으로 자라날 것이다.
신촌문화를 세우자는 연세대학교의 자정운동과 방배동 압구정동 시민들이 벌이는 건전거리 만들기 결의는 그래서 값진 공동체의 자정운동인 것이다. 피킷 한번 휘두르고 구호 한번 외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지키는 지속적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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