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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기시감<旣視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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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떤 상황과 그곳에 놓인 물건들이 이뤄내는 정경(情景)을 언젠가는 한번 본 듯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혹은 꿈속에서, 혹은 전생의 한순간 속에 있었던 것 아니냐는 감흥을 불러일으켜 뭔가 신비한 느낌에 휩쓸리게 했던 기억들.

이른바 이미 봤다(안다)는 느낌이라는 뜻의 '기시감(旣視感)', 또는 '기지감(旣知感)'으로 불리는 체험이다. 서구에서는 프랑스어로 같은 뜻의 데자뷰(dejavu)로 쓴다. 미 영화배우 덴절 워싱턴이 주연을 맡아 지난해 선보인 동명의 영화도 이를 축으로 삼아 전개한 판타지 스릴러물이다.

일반적으로 기시감에 의한 신비감은 환생과 업(業.카르마)에 관한 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서구의 아이가 가르치지 않은 불교식의 절을 해 부모를 놀라게 했다가 얼마 뒤 길거리에서 만난 티베트 승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다시 절을 했다는 등의 스토리 등으로 발전한다.

그렇다고 환생과 업에 관한 동양적 사고가 이 기시감의 근원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영원회귀(永遠回歸)'에 관한 사고를 설명하면서 "세계는 그 자신을 무한히 반복했고 자신의 놀이를 영원히 계속하는 순환"이라고 규정할 때 기시감의 서구적 단초는 이미 충분히 나타났다.

1900년 프랑스 의학자 플로랑스 아르노가 이 현상을 규정했고, 이어 에밀 보아락에 의해 데자뷰라는 용어로 정착했다.

최근 미 MIT 신경학과가 이 데자뷰의 신비감을 제거하고 나섰다. 뇌의 작용일 것이라는 추정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인 뇌 부위를 적시하면서 데자뷰가 신체 이상에 의한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주관하는 해마라는 부위에 이상이 생길 때 이러한 기시감의 현상은 잦아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새로운 정보들을 구별해 내는 뇌기능의 이상이 데자뷰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부연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밀도 높은 데자뷰의 경험대에 놓여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대선을 앞둔 야당 내부의 지나친 상대방 흠집내기식 집안싸움 모습이 그렇고, 여권이 통합을 서두르면서 보여 주는 지역감정으로의 쏠림 현상 또한 늘 반복된다. 나아지겠거니 기대했지만 그 모습이 그 모습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늘 그 모양으로 보이는 게 설마 뇌기능 이상 탓은 아니리라 믿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우리네 정치판이 정말 찝찝하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