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M&A 방어책은 세계 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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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리히텐슈타인 대표가 12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경영자들, 그리고 주주들을 '교육'(educate)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그린메일러(Green mailer.단기이익을 챙긴 후 떠나는 '기업 사냥꾼')가 아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스틸 파트너스'의 워런 리히텐슈타인 대표(42.사진)가 12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말을 안 듣는' 일본 기업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1990년 2월 펀드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던 그가 작심하고 말문을 연 것이다. 스틸 파트너스는 영국령 케이만 제도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총 운용액이 7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칼 아이칸과 손을 잡고 KT&G의 경영권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리히텐슈타인 대표는 "(스틸 파트너스가 매수하려 하는) 일본 기업들이 속속 내놓고 있는 방어책들은 세계 최악의 수법"이라며 "다른 나라라면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정부는 도쿄를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하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 그 시장에서 주주평등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소스회사인 불독 등 스틸 파트너스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일본 회사들이 '포이즌 필(독약 조항)'이라고 불리는 방어책을 내놓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포이즌 필'이란 회사가 '적대적 매수'라고 판단한 경우 매수 세력 이외의 주주들에게 신주를 발행해 매수자의 지분율을 낮춤으로써 매수를 피하는 수법이다. 2002년부터 30여 개 일본 기업에 투자한 스틸 파트너스는 '삿포로 맥주' '아데랑스(가발회사)' 등 우량기업의 투자지분을 늘려 사실상의 매수에 나서려 하고 있으나 기존 주주들의 반발과 '포이즌 필'에 막혀 있는 상태다. 그는 또 "일본 경영자에 전하고 싶은 말은 뭐냐"는 질문에 "제일 먼저 '계몽'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이 (일본 기업) 경영자를 도우러 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적대적 매수'라는 비난에 대해 "매수에는 '우호적' '적대적'의 구별은 없다"며 "우리 행동을 왜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해를 풀어달라"는 말도 수차례에 걸쳐 반복했다. 리히텐슈타인 대표는 "우리는 최소한 3~5년간 주식을 장기보유하며 기업의 가치향상을 지향하는 것을 기본 자세로 삼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본 기업 관계자들은 "어떻게 3~5년 주식 보유가 장기보유에 해당하는 지 모르겠다" "헤지펀드의 문화와 일본 기업의 문화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3일 "표적이 되고 있는 기업으로부터 리히텐슈타인 대표의 회견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등 '스틸 파트너스 대 일본기업'의 대결 구도가 강해졌다"고 전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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