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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김종철의 근작시집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시와 시단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신인등장이 많고 시 발표·시집 출간이 홍수를 이루지만 진짜 시, 좋은 시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있고, 신인들의 경우엔 보잘 것 없는 것을 크게 떠드는 쇄말주의나 언어유희, 혹은 성과 욕실의 배설 또는 동어반복이나 기벽에 빠져있기도 하다. 그만큼 전환기증상 또는 세기말 혼돈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리라.
이러한 부정적 징후에도 불구하고 중견들의 정진을 볼 수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김종철씨의 『못에 관한 명상』과 오세영씨의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의 시집은 요즘 서정시의 바람직한 한 방향성을 탐색하고있어 관심을 환기한다.
먼저 김종철씨의 연작시집 『못에…』은 우리의 서정시가 실존적 층위와 사회·역사적 층위, 그리고 미학적 층위를 탄력 있게 결합해 가는데서 그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음을 제시한다.
『마흔 다섯 아침에 불현듯 보이는 게 있어 보니/어디하나 성한 곳 없이 못들이 박혀있다/깜짝 놀라 손을 펴보니/아직도 시퍼런 못이 하나 남아 있었다/아, 내 사는 법이 못박는 일 뿐이었다니!』(명상6 「사는 법」)라는 시에서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못박고, 못 박히며, 못 빼는 일로 상징화한다. 그러면서 그는 「청개구리」 등에서는 실존의 아픔을, 「개는 짖는다!」 등에서는 사회고발을, 「천막학교」 등에서는 역사적 수난을, 그리고 「고백성사」 등에서는 신성과 세속의 갈등을 형상화함으로써 삶에 관한 총체적 천착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못 하나에서 삶의 내면적 진실을 읽어내고 사회적 아픔을 꿰뚫어내며, 역사성을 투시하는가 하면 종교적 형이상성을 명상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못은 인간 또는 삶의 등가물에 해당한다.
한편 오세영씨는 『꽃들은…』에서 서정시가 어떻게 사회성과 철학성, 그리고 미학성을 함께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한 시범을 보여준다.
『목메 칼을 들이대도 할 말을 하는/서슬 푸른 장미의 가시/진흙밭 일궈 자갈밭 일궈/이 세상 꽃길 만드는 게 죄라면/나는 즐겁게/칼을 받겠다/독재자의 가위에 싹둑 짤리는/그대의 머리/그러나 장미는/대가 잘려야만 더욱 푸르다/빛 고운 우리나라 5월 장미꽃』(「장미꽃」)이라는 시와 같이 5월 광주항쟁을 장미꽃의 서슬 푸른 모습과 날카롭게 결합함으로써 저항의식을 미적 엑스터시, 또는 비극적 황홀로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사회성과 예술성이 탄력 있게 조화된 서정시의 한 전범을 볼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김종철·오세영씨의 근작시집들은 개인과 사회, 사상성과 예술성을 함께 껴안음으로써 삶의 총체성을 확보하고 시적 온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린 시 정신을 담고 있다. <김재홍(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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