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메트러폴리턴 오페라 주역|소프라노 홍혜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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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 뉴욕 메트러폴리턴 오페라하우스의 프리마돈나 홍혜경씨(35)가 지난달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섰을 때 끊임없이 터져 나온 박수는 여느 국내 연주회 때보다 힘차고 뜨거웠다.
홍씨가 84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메트러폴리턴 오페라에 데뷔했으며, 계속해서 파바로티·도밍고 등 세기의 테너들과 나란히 주역을 맡아 크게 호평 받았다는 등의 낭보가 전해질 때마다 꽤 대견하고 기뻐하면서도 어쩐지 실감할 수 없었던 이 한국출신 소프라노의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들이 고국의 청중들을 엄청난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전세계 성악인 들에게「꿈의 무대」로 통하는 메트러폴리턴 오페라에서 백인일색의 공연에 끼어 든 까만 머리, 갈색 눈의 홍씨가『라클레멘자 디 티토』중 세르빌랴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자 뉴욕타임스는 그 화려한 데뷔를 이렇게 전했다.
『목소리가 맑고 아름다우며 표현력이 풍부한 홍혜경은 마치 18세기 그림에서 살아 나온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노래한다. 이 성악가의 성장을 주목한다.』
과연 85년 메트러폴리턴 오페라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인 세계적 지휘의 거장 제임스 레바인에게 발탁된 홍씨는 푸치니 오페라『라보엠』중 여주인공 미미 역으로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대열에 섰다. 그 이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시즌마다 메트러폴리턴 오페라의 주역으로 활약중인 홍씨는 91∼92시즌만 해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 기념 오페라공연시리즈 5개 작품 가운데 4개의 주역을 맡아 그 저력을 새삼 과시했다.
『사실 좋은 목소리를 타고난 한국 성악가들이 많기 때문에 테크닉만 제대로 익히면 얼마든지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원 여중 재학 중 미국 유학 길에 올라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났기 때문에 잠재력을 최대로 계발할 수 있었지요』
홍씨는 자신이「자연스럽고도 완벽한 연기로 청중을 오페라 속으로 끌어들이는 성악가」 라는 평을 듣는 것도 일찍부터 본격적인 오페라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무대에 서면 전혀 다른 사람, 즉 작품 속의 인물 그 자체로 돌변해 버린다고들 하는데 사실 수영선수가 물 속으로 뛰어들듯 저는 금세 오페라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무대에 서면 긴장되거나 떨리기는커녕 마음이 편안하고 한결 기운이 나는걸 보면 소위「끼」라는 걸 타고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 같은 자질을 일찌감치 발견해 오늘이 있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본인은 어머니 김현애씨(62)라며 홍씨는 고마워한다. 홍씨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했을 당시부터 즐겨 노래부르고 피아노를 연주한「최상의 태교」외에도 그가 일찍부터 좋은 스승을 만나 음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지금도 홍씨의 두 딸을 돌보아줌으로써 육아 걱정 없이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홍씨가 출연하는 공연마다 객석을 지키며 격려해주는 남편 한석종씨의 전폭적 이해와 사랑 또한 큰 힘이 된다고 그는 자랑한다. 이 자랑스런 성악가에 대한 열광과 환호 뒤에는 홍씨가 영어·독어·프랑스어·이탈리아 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사전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외국어공부에 매달려온 남모를 노력이 있었다. 또 일단 오페라 배역을 맡으면 공연 전 1∼2개월에 걸친 출연진 전체연습에 앞서 약6개월 동안 혼자 공부하면서 그 배역의 성격과 특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홍씨의 완벽주의 정신도 숨어있다.
그런가하면「세계적 성악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부르기 쉬운 서양식 이름이 필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사실상 외국인들에게는 결코 발음이 쉽지 않은 본래의 한국 이름을 지켜온 고집 또한 큰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파바로티라는 이름도 원래는 그리 친숙한 게 아니었지만 그의 재능과 인기가「누구나 아는 이름」으로 만들었듯이 언젠가는 전세계 음악 팬들이 홍혜경이란 이름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부르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그는 웃지만 결코 우스갯소리쯤으로 넘겨버릴 빈말이 아닌 성 싶기 때문이다.
사실 홍씨가 메트러폴리턴 오페라 외에 시카고 오페라·워싱턴 오페라·샌디에이고 오페라·캐나다 오페라·토론토 오페라 등 북미 각지의 유명한 오페라 단 주역으로 초청 받는 횟수가 거듭 될수록 그의 이름을 제법 정확하게 발음하는 외국인이 점점 늘고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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