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가 창간한 유명 온라인 정치잡지인 '슬레이트'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멀린다&게이츠 재단 직원이 연설문 작성을 돕기 위해 나섰으나 게이츠 회장의 마음에 맞는 원고는 좀처럼 완성되지 못했다.
몇 달을 질질 끌던 작업은 3월부터 피치가 올랐다. 어느 날 게이츠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려고 장관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액자에 걸려 있던 조지 마셜(1880~1959) 전 국무장관의 연설문을 보고 퍼뜩 영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셜은 전후 유럽 부흥계획인 '마셜 플랜'으로 1953년 노벨 평화상을 탄 인물이다.
게이츠는 "47년 6월 5일 마셜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을 교육.보건.부의 불평등으로부터 살려내자'라는 글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전후 유럽을 복구하는 복잡한 문제를 길거리에 서있는 평범한 사람에게 쉽게 설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강조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며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자선사업을 남에게 설명하는 일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이츠가 이번에 내놓은 '창조적 자본주의' 개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 뒤 연설문 작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구상의 복잡한 문제들이 기술의 진보로 얼마나 단순해졌는지가 더해졌다.
절친한 친구인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마지막 도우미로 나섰다. 5월 말 게이츠는 버핏 소유의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가 열린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그를 따로 만났다. 버핏으로부터 연설 목소리와 제스처에 관한 비법을 몇 가지 전수받았고, 마침내 7일 연설에서 전 세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게 됐다.
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