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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기자 출신 피터 아네트, 베이징 청년보와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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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걸프 전 당시 CNN의 스타 종군 기자였던 피터 아네트(72.사진)가 중국 베이징(北京)에 나타났다. 베이징 방문 목적은 몇몇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완연한 노인이었다.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형형한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아네트는 1991년 1월17일 새벽 2시30분에 시작된 다국적군의 이라크 바그다드 공습을 17시간 동안 생중계하면서 주목받는 기자가 됐다. 이로 인해 소속사인 CNN도 세계적인 방송사로 떠올랐다. 10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전쟁터에서 죽을지언정 병상에서 죽지는 않겠다"며 현장 취재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다음은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베이징 청년보와의 일문일답 요지.

-기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기자를 선전도구 혹은 파괴자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기자는 관찰자다. 보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의 본 현장의 정확성에만 책임질 뿐이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깊은 경험은 뭔가.

"걸프 전 개전 직전 미국 정부는 모든 기자의 철수를 권고했다. CNN만 남았다. 전쟁 시작 최초 17시간 동안 나와 동료 2명이 상황을 생중계했다. 고독했지만 행복했다. '현장을 보는 유일한 기록자'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당시 위성전화로 20여 차례 보도했다. 2개월이 지나자 떠났던 기자들이 다시 돌아왔다."

-당신은 걸프전 개전 열흘 뒤 사담 후세인과 인터뷰했다. 97년 3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역에서 오사마 빈 라덴도 만났다.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후세인은 잘 생겼지만 서구에 경도된 세속 군주다. 그러나 빈 라덴은 음식도 먹을 것 같지 않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인물이다. 빈 라덴은 탈레반 정권같은 회교원리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당신은 여러차례 해고 위기를 겪고 실제로 당하기도 했다. 그 이유를 뭐라고 보나

"권력자는 진실을 두려워한다. 나를 매국노 혹은 반역자로 몰고 간 이유다. CNN과 NBC에서 해고당한 이유도 그것이다."

-기자로서 일상이 궁금한데.

"상당한 재산(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을 모았고 상도 많이 탔다. 그러나 잃은 것도 많다. 미국에 꽤 큰 집이 있지만 그곳에 거의 살지 못한다. 전처는 워싱턴에, 딸은 LA에, 아들은 뉴욕에, 형제들은 오타와와 시드니에 산다. 친구들과도 거의 만나지 못한다. 인간적인 삶은 내게서 모두 떠나갔다."

-앞으로도 취재를 하고 싶은가.

"물론이다. 난 여전히 기자다. 병상에서 죽느니 전쟁터에서 죽기를 택하겠다"

베이징= 진세근 특파원

◆피터 아네트=1935년 뉴질랜드 출생. 뉴질랜드, 호주에서 기자를 하다 1962년 미국 AP통신사에 입사했다.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1981년 CNN에 입사해 창립자 테드 터너와 함께 '24시간 동안 멈추지 않는 뉴스채널'을 만드는데 힘을 모았다. 베트남, 중동, 아프간, 걸프, 체첸, 이라크 전쟁을 모두 현장 취재했다. 1998년 6월 사린 가스 보도로 CNN에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실패 발언으로 NBC에서 각각 해고됐다. 현재 중국 광둥(廣東)성 산토우(汕頭)시 산토우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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