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역사적 기억을 물려주려는 그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호 21면

최민화 작, ‘파쇼에 누워’(위), ‘분홍 아스팔트’

낯익다. 아니 낯설다. 이미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작품 제목도 귀에 설다. 지랄탄ㆍ백골단ㆍ가투ㆍ파쇼…. 화가 최민화(53)씨가 전시장에 불러들인 것은 20년 전 우리의 모습이요, 일상이다. 개인전에 ‘6월 항쟁 20주년 기념전’이라 곁제목을 붙인 화가는 도록 첫 장에 단 두 마디를 적었다. “모든 회상은 불륜이다. 망각은 학살만큼 본질적이므로.”

이 화가의 이름부터 살펴보자. 필명 민화(民花)는 ‘민중은 꽃이다’란 뜻이다. 또는 ‘민중이 꽃이다’다. 그에게 그림은 민중이 꽃처럼 빛나던, 그 섬광처럼 번쩍이는 과거의 어떤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그는 특히 가두투쟁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문화평론가 이재현씨는 이를 ‘가두투쟁의 에로티시즘’이라 부른다. ‘길 위의 화가’ 최민화씨는 민중이 덩어리가 되어 거리에서 움직이고 반항하고 투쟁한 한국 현대사의 한 대목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보다 수가 줄어들고 있다. 기억을 물려주려는 의식적ㆍ인위적 노력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그의 ‘에로티시즘’이다. 최민화씨는 우울하게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분홍색을 써서 방탕하게 또는 정열적으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세운다. 이 태도는 중요하다. 20년을 한결같이 ‘6월 항쟁’을 붙들고 작업실에서 싸워온 그의 투쟁이 분홍이라니, 놀랍다.

이재현씨는 그림 앞에서 쓴다. “어떤 사람들은 최민화의 그림들로부터 6월 항쟁의 기억과 관련해서, 정치적 혹은 회화적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최민화의 그림들로부터 이 지긋지긋한 현대사의 시궁창으로부터의 구원의 계기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ㆍ사회적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라고 아주 심각하게 물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최민화의 그림이 묻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