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이사 “남북한균형외교 필요”/한­러학술회의 러학자 논문2편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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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3,14일 이틀동안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한양대 중소연구소(소장 유세희) 주최 제5차 한국·러시아 합동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측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중 두편을 발췌,소개한다.
◎러시아와 아태관계/미하일 티타렌코 러시아극동연구소소장/대북관계도 유지해야 한반도 안정
국제질서 변화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역사상 최초로 대립이 아닌 이해와 협조가 모색되고 있다. 러시아는 군사적으로뿐 아니라 경제·문화 등 각 영역의 변수로 등장했다.
러시아는 수천㎞에 달하는 태평양을 끼고 있는 주요 태평양연안국인데도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의 활동이 그다지 크지 못했다. 그러나 소련해체후 러시아는 국내적으로 경제개발의 중심이동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자동차·우주·전자산업 등의 주요 거점이 러시아 국경밖,즉 구소련소속이었다가 독립한 「다른 나라들」에 위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아­태진출은 단순한 강령이나 목표가 아니라 생사를 건 목표가 됐다.
러시아는 또 이 지역 진출을 서두를 수 밖에 없는 국제적 요인도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아­태지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 지역의 세력균형이 심각하게 왜곡될 우려가 있다. 이는 군사적 세력균형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세력을 포함한 모든 측면을 포괄한 개념이다. 러시아가 이지역의 다른 주도국들과 같은 수준의 이해관계를 가지지 못한다면 러시아와 이들 국가의 관계악화를 초래,이 지역의 심각한 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새로운 긴장을 방지하고 협력안보체제 등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는데 공동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태지역의 발전 가능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자연발생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닌 만큼 우리는 새로운 목적 지향성을 가진 자세를 필요로 한다.
이와 관련,우선 냉전종식에 따른 긴장완화는 관계국들 사이의 신뢰회복을 위한 구체적·실질적 조치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 기본이 바로 경제협력의 활성화다. 따라서 러시아는 한국 등 아­태 각국과의 경제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한반도 문제와 관련,러시아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최우선점을 두고 있으나 북한과도 정상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리라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극동연구소 선임연구원/“아태와 경협은 사활적 목표”
구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은 전쟁재발을 방지하고 미국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며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통일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북한간 군사균형을 이뤄 극동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한다는 기조에 서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의 표현대로 동서대립이 무너져 평화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러시아는 문명과 상식과 보편가치를 향한 선택을 하게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대북한 정책도 두가지 위험을 피하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 「과거의 성과」를 무시해서도 안되고 이상과 현실을 혼동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위기상황을 방지하고 정치·군사적 안정을 촉진하기 위해 남북한과 공히 탈이데올로기적 균형관계를 유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두나라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도록 화해에 공헌하는 한편,미국·중국·일본 등 주변국들과 측면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러시아·북한간 관계는 원만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상대방을 재평가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북한언론에 구 소련관련 뉴스의 비중이 떨어지거나 구석에 밀리는 것으로도 그 내막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반면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역내 북한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과거와 달리 이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고 있다. 국제관계의 초점이 경제문제로 옮겨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북한의 대러시아 부채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는 러시아 외곽에서 분쟁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남북한과 동시에 정상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또 미국이나 일본 등이 한반도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한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도 독자적이고 조화로운 역할을 담당해야 통일을 이루고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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