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냐,서비스 개선이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버스나 택시의 불친절이나 불편함에 부대끼는 사람들은 교통요금이 더 올라도 좋으니 제발 사람대접 좀 제대로 받게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가격이 인상되면 값이 오른 만큼 서비스가 개선되지도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타기는 더욱 힘들어져 정부가 무엇때문에 요금 인상조치를 취했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하게 된다.
교통요금뿐만 아니라 교육·통신·보건 등 국민생활의 기본적 수요와 직결된 공공요금의 조정도 우리들의 일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전기·수도·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도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하다면 더 많은 요금을 내도 좋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기본적인 복지수요 충족을 위해서는 적정수준이하로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대한 상공회의소는 최근 발표한 「공공요금 결정제도에 관한 연구」에서 정부가 그동안 과도하게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온 결과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고,각 사업의 주체들은 합리적인 경영의욕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정부가 지나치게 물가안정정책에 얽매여온 결과 사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인 버스나 택시요금 등에 시장경제원리가 적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수의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지적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 및 사업자와 국민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민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공공요금에 대해서 그 어느쪽도 고통의 분담을 수용할 자세가 돼있지 않다면 현재와 같은 인상억제 일변도의 가격정책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고통은 분담하려들지 않은채 오로지 편의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불편의 가중으로 귀착하게 마련이다.
우선 정부는 물가지수에 집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5공화국은 물가안정을 대단한 치적으로 삼았지만 그동안 각종 요금인상을 억제한 결과 사회 간접시설 투자가 지지부진했고 산업경쟁력마저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에는 무더기로 가격을 올려 인플레 심리를 부채질했다. 현정부에서도 저물가가 곧 정권의 업적이라는 사고로 정책을 다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철도·우편·수도 등을 관장하는 공기업은 경영에서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적자가 나면 정부가 메워주겠거니 하는 고식적 경영에서 벗어나 새로운 바람을 넣어야 한다.
공공요금은 서비스 원가주의를 기초로 하여 비용을 충당할 수 밖에 없으므로 수익자 부담원칙은 불가피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대책은 별도로 고려되어야 하나 모든 이용자에게 값싼 요금의 적용을 기대해서는 어떠한 서비스의 개선도 이뤄지지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