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달」맞아 바쁜 이수정장관(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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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람을 사람답게 사회를 아릅답게 나라를 나라답게/“문화가 할 일입니다”/경제비해 초라… 이젠 힘쏟을때/통일후 문화통합 대책도 시급
10월 「문화의 달」. 고추잠자리 대신 아침 저녁의 쌀쌀한 날씨로만 가을을 느껴야 되는 올해도 각종 행사가 풍성히 마련돼 있지만 어디에도 신나는 구석은 없어 보인다. 먹고살 걱정이 없어져 이제는 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하지만 누구하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이수정문화부장관. 지난해 12월 제2대 장관에 취임해 1년 가까이 우리 문화를 관의 입장에서 지켜봐온 이 장관을 8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 위치한 문화부 건물 3층장관 접견실에서 만났다. 접견실은 일명 「녹실」(Green Room)이라 불리는 곳으로 61년부터 63년까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고 박정희대통령의 집무실이었으며 이후 경제기획원장관실로 쓰이면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태동시키는 등 경제개발의 산실 역할을 했다. 「녹실」은 실내의자가 녹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의 달」을 맞아 이제 경제개발보다 더욱 시급한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온 「문화개발」에 대해 이 장관의 얘기를 들었다.
­「문화의 달」을 맞아 어떤 행사들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92 서울도서전」을 비롯해 서울에서 80여가지의 행사가 있고 지방에서도 모두 3백여 행사가 치러집니다.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활발한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데 이는 국민들의 문화욕구가 높아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도면에서도 기대이상으로 높은 것으로 미뤄 문화계층이 두꺼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관청인 문화부가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만 박물관·도서관·미술관 등 산하 기관을 총동원,문화에 대한 사회교육에 중점을 두어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이들 기관들이 지역의 문화구심체가 돼 국민들에게 문화를 알리는 전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모든 가치관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요즘 문화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나는 문화를 「사람을 사람답게,사회를 사회답게,나라를 나라답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곧이어 드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모든 사람이 원천적인 문화욕구가 있으며 경제적인 충족만 가지고는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있어 기본적인 수요는 충족됐다고 이야기해도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같은 사실은 계속 상승하고 있는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욕구는 상승하는데 비해 문화기반은 너무 허약한 것이 아닙니까.
▲개인·사회·국가의 문화욕구는 높아지고 있으나 문화의 공급체계는 낙후해 있어 문화적인 갭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현재를 문화적인 과도기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9년후인 2001년이 되면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만5천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정도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있어 고비가 될 것이며 진정한 문화를 확립할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GNP만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고 따라서 문화를 위한 새로운 창조기로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서구의 몰락을 점치는 주장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 동서양의 혼합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요.
▲내가 자란 농촌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물레를 돌리고,소죽을 끓이고,그러고나서 해가 뜨면 밭일 나가시고,저녁이 되면 찾아온 마을 사람들 대접하랴 한마디로 바쁜 생활이었습니다. 그때의 생활은 근면과 공동체적인 삶을 상기시켜줍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라 하겠지요. 지금 서양문화가 사회의 모든 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러한 우리 문화를 떠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의 나아갈 방향을 생각할때 일본을 떠올리게 됩니다.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소화하고 발전시켜 그것을 능가하는 독특함을 창조해내지 않았습니까. 요즘 일고 있는 우리의 것 찾기 움직임은 그런 의미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대해 언제까지 문화의 벽을 세워놓고 있어야 합니까.
▲일본만은 안된다는 자세는 언젠가 고쳐야할 것으로 봅니다.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지요. 우리 스스로 외부와 차단된 나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영화·대중가요 등도 들여와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한거죠. 올해 우리의 「문화통신사」가 일본에 가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측도 우리나라에 같은 내용의 사절단을 파견하고 싶으나 반일분위기 때문에 늦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문화에 대해 자주적인 대응능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통일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일되기전 동·서독이 가장 우려한 것은 군의 통합이었습니다. 다음이 경제통합이었고 문화통합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군의 통합이 가장 쉽게 이루어졌으며 경제통합도 어떻든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문화통합은 모두 요원하다고 봅니다. 독일 디 차이트지는 문화통합에 대해 분단세대가 사라지고 세세대가 자라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논평할 정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려야 될 필요성도 높아지지 않았습니까.
▲올해 일본에 간 문화통신사에 이어 내년에는 중국과 미국쪽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중국에는 수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미국은 우리 교포들이 로스앤젤레스 폭동사태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를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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