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안보보다 경제이익 선택/남북 쌀교역 제동 미의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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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선닥치자 압력단체에 굴복/한국 “내국거래다” 설득에 부심
남북간의 쌀교역 등 물자교역과 관련해 미 국무부가 거래원칙을 정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서 남북한간 경제교류에 새로운 장애로 등장했다.
미 국무부는 그동안 미도정협회(RMA)가 남북한간의 쌀거래가 국제 쌀시장을 혼란시키고 있다며 보복을 주장했을 때도 상무부와는 달리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그것은 미국이 남북한간 쌀거래를 막음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이익보다 남북교류의 활성화로 생기는 동북아지역의 안정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5일 미 국무부의 크리스토퍼부차관보가 한국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는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무역실무회담에서는 남북한 쌀교역문제가 처음으로 철저하고 진지하게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주한미대사관의 리처드 머포드 경제참사관도 지난주 홍정표외무부 통상국장을 만나 한국이 남북한간에 교역이 늘어날 것에 대비,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부터 내국간 거래라는 예외인정을 받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미 국무부도 남한의 경제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는데다 연내에는 각종 공동위가 구성돼 경제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상황변화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이 어떻게든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선거까지 닥쳐 국무부로서도 압력단체들의 요구에 어떤 방식으로든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미 도정업자들은 한국이 북한에 정부보조금을 받아 생산된 쌀을 「수출」함으로써 태국의 대북한 쌀수출 계약이 파기됐으므로 GATT상의 최혜국조항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잉여농산물 처리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GATT에서 문제되는 것은 수입부문으로 과거 서독의 경우 GATT의 예외인정을 받아 동독상품을 무관세로 수입했으며,중국은 하나의 중국정책에 의해 대만상품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나 중국이 GATT회원국이 아니어서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무엇보다 남북한간 거래가 국제교역이 아닌 「내국간 거래」라는 입장을 취하며 GATT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군다나 GATT 1조 최혜국조항은 수입관세와 관련된 것인데 회원국이 아닌 북한의 쌀 반입과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단지 GATT 16조에 보조금을 주는 농산물은 수출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나 농산물에 대한 수출보조금 문제는 현재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부분이어서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예외인정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GATT 비회원국이라는 점도 예외인정을 전제로 한 남북교류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GATT의 예외인정을 받는다면 어차피 미국의 이익이 될 것이 없는데다 쌀이외에 남북한간 교류가 가능한 물품중 미국가 이해가 상충되는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 설득하고 있다.
또 남북교류가 진통을 겪고 한국내 반미감정이 일어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손상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로서도 무작정 남북교류만 확대해 갈 경우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까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 무언가 대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정부내에서는 한 방편으로 남북간에만 무관세 거래를 할 수 있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나 남북거래는 정부의 통제하에 실시한다는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정부내 반대도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국가간 교역」을 전제로 한 이같은 협정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어서 정부당국자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밖에 북한을 적성국으로 분류,북한의 물자를 원료로 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조치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남북교류를 위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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