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태세 이래도 좋은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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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 등 최근 적발된 일련의 간첩사건은 우리의 대공태세와 대북인식에 큰 허점이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동안 안기부와 경찰·군 등 우리의 대공기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남한내의 공작단들을 총지휘한 것으로 발표된 거물간첩 이선실의 경우 60년대와 70년대에 남한에 침투한 적이 있고,80년에는 조총련 모국방문자 영주귀국을 위장해 국내에 들어와 10년동안 공작활동을 벌였다. 그동안 이선실은 이름은 바꾸었으나 합법신분을 얻어 민중당 창당에도 개입하고 출판물에 글을 써서 발표하는가 하면 정부 감시하에 있는 인물의 집에도 출입하고 반정부 단체와 공공연히 접촉했다. 문제는 명백히 주목대상이 돼야 하고 충분히 적발할 수 있었던 인물에 대해 보안당국이 10년간이나 눈치조차 못채고 있다가 유유히 입북토록한 대공망의 허점이다.
재일 조총련이라면 친북한계의 좌익인물들이다. 그런 사람이 우리 정부 방침에 따라 남한에 정착했다 해도 그들의 동정에는 당국이 상당한 관심을 가졌어야 옳다. 더구나 그녀가 이름을 바꾸어 합법신분을 얻었다고 해도 행정기관이 사전에 신청을 받아 검토한후 허가했을 것이다. 그녀가 당국의 감시하에 있던 문익환목사와도 접촉하고 민가협에도 출입했다니 필시 보안당국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 과정을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
간첩단들이 북한에 출입할때 주통로로 사용했다는 강화도는 군이 주둔하면서 철저한 경계를 펴고 있고,경찰의 지역경비 태세도 엄격하여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이 적지 않은 곳이다. 그런 지역을 간첩들은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에겐 강력한 국가보안법이 있고,안기부·경찰·기무사 등 다원적인 대공수사망이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상황의 2중성」을 강조하여 대화는 계속하되 대북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들은 북한이 우리의 엄중한 법체계나 수사기관·정부자세를 비웃듯 과거의 남로당을 이 땅에 재건하여 95년까지 적화통일을 끝내기 위한 공작을 진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어이 없는 사태인가.
정부는 우선 대공수사·사찰기관의 태세와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고칠 제도는 고쳐서라도 다시는 이런 수치스런 일이 거듭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또한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대공 경계태세가 이완되고 있음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남북대화의 영향도 있고 해 북한 공산정권의 위협적 속성에 대한 경계심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느슨해진 대공 경계태세를 다시 조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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