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할리우드 액션 패러디 … 영국식 코미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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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뜨거운 녀석들'은 의외로 재미있는 코믹액션물이다. '의외'를 붙인 것은 배우도, 감독도 낯선 데다 영국 영화라서다.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 미국이라면 모를까 영국의, 그것도 시골경찰이 마구잡이로 총질하는 영화라면 갓 쓰고 자전거 타듯 낯설게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게 바로 이 영화의 묘미다. 할리우드 장르를 영국식으로 변주하는 것, 그래서 코믹함을 더하고, 그 마무리에는 액션물 본래의 후련한 맛까지 더한다.

주인공 니콜라스(사이몬 페그)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인 런던 경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검거 실적은 거꾸로 동료의 시샘을 사 시골로 좌천당하는 구실이 된다. 새로 부임한 시골마을, 한눈에도 한가롭다. 도착 첫날밤부터 그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경미한 범죄자들로 유치장을 그득 채우지만, 너나없이 아는 사이인 이 동네에서는 헛수고일 따름이다. 의뢰 사건이라야 집 나간 오리를 찾아 달라는 것 정도. 파트너인 대니(닉 프로스트)는 할리우드 경찰액션물의 열혈팬인데, 실전에는 총 한번 제대로 쏴봤을까 싶은 순둥이다.

도입부는 언뜻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갓진 시골마을에서 열혈경찰이 좌충우돌하는 얘기라면 황정민.양동근 주연의 한국 영화 '마지막 늑대'나 북유럽 코미디 '깝스'가 있었다. 그 연장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즈음, '뜨거운 녀석들'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지독히도 연기를 못하는 동네 배우가 참혹하게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살인을 의심하는 니콜라스와 달리 시골경찰들도, 마을사람들도 모두 사고사로 여긴다. 이후 살인사건이 이어지는데도, 사고로 치부하는 마을사람들의 태연자약한 태도는 변함이 없다. 니콜라스는 나 홀로 수사에 몰두하고, 마을 전체에 모종의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한다.

'뜨거운 녀석들'은 잡탕밥이다. 할리우드 액션물의 패러디는 물론이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같은 스릴러가 들어 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 대한 은근한 풍자도 감지된다. 잡탕밥은 이도 저도 아닌 얼치기가 되기 쉬운데, 이 영화는 각각의 맛을 꼼꼼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코미디라는 큰 울타리 안에 꽤 잘 녹여냈다. 단순한 '패러디'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유형의 영국식 경찰코미디를 빚어냈다. 감독 에드거 라이트는 미국 좀비영화를 패러디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년)에 이어 이번 영화로 영국에서 화려한 흥행성적을 거뒀다. 청소년 관람불가. 참고로, 시체들이 처리(!)되는 방식이 제법 잔혹하다. 21일 개봉.

이후남 기자

주목! 이 장면 영화 막판 15분 남짓 질펀한 액션이 이어진다. 두 주인공이 쌍권총을 들고 몸을 날리는 액션까지, 과장과 비약이 총동원된다. 대니가 좋아하는 '폭풍속으로' '나쁜 녀석들'의 잔뜩 폼 잡는 액션이 고스란히 패러디된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이보다 더 많은 패러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터.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해도 영화를 즐기는 데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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