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국영기업 민영화 2단계 조치의 안팎/옐친,수혜층 양산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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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체제 회귀 막는 안전판 계산/“속임수” 보수파 반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일과 3일 중요한 두가지 결정을 실행했다.
하나는 1일부터 1억5천만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주식상환권 분배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숱한 논란을 벌이면서도 실행을 주저해왔던 토지경매를 비록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모스크바시 라멘스키 구역에서 금년 12월 이전에 실행할 것을 명령하는 포고령에 서명한 것이다.
이번 2단계 민영화 프로그램은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1월 실시됐던 1단계 민영화 계획이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면 이번 2단계 계획은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에 회의를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시장경제 체제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끼게 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1억5천만 러시아인 모두에게 1만루블(약3만1천원)짜리 주식상환권을 배부,이들이 자본금 1천만루블(약3천1백만원),종업원수 2백명 이하 국영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한 이번 조치는 그러나 계획한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정부의 계획은 기득권 계층을 많이 양산해 구체제로의 회귀를 막는 안전지대를 확보하자는 것이나 이미 불만세력들에게 또 한번의 공격기회를 줄뿐 정부의도가 제대로 먹히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의회내 산업동맹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반수 이상이 주식상환권을 현금과 즉각 교환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금화 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식상환권의 가치가 앞으로 더욱 하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이번 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아나톨리 추바이스부총리는 약5천5백개의 주요기업들이 민영화될때 이 기업들의 주식 35%는 주식상환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배분될 것이기 때문에 주식상환권의 실제가치는 액면가보다 훨씬 높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엔 당장 월급도 못받는 상황에서 민영화 되는 기업이 성공적으로 경영될 가능성보다 적자로 반전될 가능성이 더 높은데 무엇하러 더 가치가 떨어질 주식상환권을 갖고 있느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강경보수파 인민대의원인 겐나디 사벤코는 이번 계획을 『사기』라고 주장하고 『이 계획은 이미 상당수 민영화 된 재산을 확보하고 있는 마피아에게 더 많은 국유재산을 불하하는 효과 밖에 갖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하고 정부가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도 이 제도가 『기본적으로 잘못된 속임수』라고 주장하고 옐친정권의 경제정책에 조소를 보내고 있다.
의회 지도자들도 『옐친이 의회 휴회기간중 포고령으로 2단계 민영화 조치의 시작을 명령한 것은 명백한 법률위반』이라고 비난하고 포고령의 수정을 의회 결의로 명령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
따라서 현재 상황으로 볼때 새로운 제도적인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2단계 민영화 계획은 원래의 의도를 살리는 쪽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모스크바의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 제도가 서방으로부터는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는 말뿐인 찬사를 듣게 하겠지만 「부익부빈익빈」의 상황을 가속화해 가뜩이나 혼란하고 어지러운 러시아 정치·경제상황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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