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베스트셀러 소설 10위권내 최신작 7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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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드디어 독서의 계절이 왔다. 미국 여름의 마지막 롱 위크엔드. 노동절 피크닉을 나갔다 집에 돌아올 때면 아름다운 석양과 더불어 서늘한 한기를 느낀다. 여름에서 곧 겨울로 변해버리는 대부분의 미국 날씨. 들뜬 여름휴가철에서 이젠 11월말까지 공휴일 하루 없이 계속 근무해야 하는 데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돈을 저축해야 하는 미국사람들은 즐겨 책을 읽는다. 명실공히 독서의 계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금수강산, 청명한 우리나라 가을 날씨는 너무 좋아서 모두 나들이를 나가는 바람에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출판업계에서 궁여지책으로「독서의 계절」이란 말을 만들어냈다는 설도 있다.
미국 출판업계는 이제부터 크리스마스 대목까지 각축을 벌이고 그 덕분에 독자들은 매우 훌륭한「물건」들을 접하게되는데 그「물건」들이란 저자의 야심작, 출판사의 돈보따리, 평론가의 생업을 유지시키고 독자들 기억에 오래 남게 될 문제작들을 말한다.
l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뉴욕타임스의 서평란은 이번 주30쪽에서 60쪽으로 늘어났고, 소설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 중에 일곱은 이번달 새로 등장한 작품들이다.
올 상반기를 석권해온 율사출신 미스터리작가 그리셈의『폘리컨 소송의뢰서』를 압도하는 소설은 아직 없지만 눈에 띄는 작품은 7위에 랭크된 수전 손탁의『화산을 사랑하는 사람』. 넬슨제독과 그의 연인을 중심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수필가·사진작가(그녀의 사진 집에『on Photography』는 유명하다·평론가 등 여러가지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 여류문필가는 예술작품을 평가하는데는 분석보다 그 작품을 가능케 하는 시각의 즐거움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솔직하고 대담한 주장을 펴왔다.
지난 90년엔 앞으로 5년 동안 연 10만달러씩 아무 조건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맥아더재단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그 지원금에 의한 첫 성과물이다.
전통적인 남자의 권위와 역할을 위협하는 현대여인상의대표이며 첨단을 걷고 있는 멋쟁이 여자가 그리는 남자상은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저자가 택한 남자는 나폴레옹을 무찌른 넬슨 제독. 1772년 베스비우스화산 밑에 자리잡은 유럽 제2의 도시 나폴리에 영국대사로 부임한 영국신사의 삶과 사랑, 취향과 경륜이 프리즘을 통과한 무지개빛처럼 그려져 있다.
비소설 분야엔 오랫동안 기다리던 두권의 책이 선보였다. 제임스 헤리어트의『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벤저민 호프의『새끼돼지 피그렛의 덕』.
10년만에 나온『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자전적 작품 가운데 다섯번째 책. 영국 성공회 찬송가에서 딴 그의 기존의 책들은『크고 작은 모든 것들』(1972, Al1 Creatures Great&S-mall)『총명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1974, All Creatures Bright&Beautifu1)『슬기롭고 놀라운 모든 것들』(1977, All Creaturcs wise&Wonderful)『하느님께서 다 만드셨네』(1981, Lord made Them All)등이다. 그의 책은 40여년간 요크샤이어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동안 주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삶의 따스함·웃음·드라마·휴머니티, 그리고 삶이란 얼마나 충만하고 복된 것인가를 실감케 할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같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애정을 새삼느끼게 해준다. 그의 이번 저서『살아있는 모든 것들』도 이미 발표된 네권과 내용면에서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언제 읽어도 즐거운 삶의 예찬을 천부적인 글재주와 동물들과도 대화할 수 있는 자애로운 수의사의 통찰력을 통하여 만끽하게 해준다.
벤저민 호프의『새끼돼지 피그렛의 덕』은 일종의 철학책. 10년 전 저자는『새끼곰의 도』(The Tao Pooh)란 책을 내놓아「도」(Tao)란 단어를 미국인들 사이에 유행어로 만들었고 그 개념을 보편화시켰다.
「푸」(Pooh)는 영국 동화작가 알렉산더 밀느의 유명한 동화『Winnie The Pooh』의 주인공. 영어권 어린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사랑하는 새끼곰이다.
이번에도 역시 밀느의 또 하나의 주인공 새끼돼지 피그렛을 통해서「덕」(Te)을 소개한다. 그래서 영어권은 또 하나의 단어「덕」을 얻게 됐다.【조승훈<을지서적 외서코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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