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8관왕 위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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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KBS바둑왕 결정 3번 승부에서 이창호 5단이 스승 조훈현 9단을 2승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KBS바둑왕전은 극적인 요소가 많았다. 조9단은 패자조로 밀려났다가 기사회생해 사제대결을 가능케함과 동시에 첫판에서 절묘한 내용으로 역전승에 성공, 남은 두판 중 한판만 이기면 타이틀을 차지할 유리한 입장이었으나 막판에 이5단이 크게 분발하여 제2, 3국을 내리 이겨버렸던 것.
이5단은「기다리는 바둑」「한국의 강태공」등의 별명이 말해주듯 끈기가 남다르고 끝내기가 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시간을 많이 사용할 수 있는 신문기전에 강한 대신 초속기로 두어야만 하는 TV기전에는 약할 듯 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금년들어 MBC제왕전과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 속기전까지 석권한 사실은 그의 바둑이 두루 강하다는 점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한국기단의 타이틀홀더는 총4명. 조훈현9단·서봉수9단·유창혁5단·이창호5단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4명중 이5단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서9단이 국기, 유5단이 왕위를 보유하고 있고 조9단이 국수·기성·기공·패공의 4관왕인데 비해 이5단은 세계기전인 동양증권배를 비롯하여 명인·최고위·비씨카드·대왕·박카스·MBC제왕·KBS바둑왕 등 8관왕이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5단은 명실상부한 제1인자다. 금년 들어 57승16패(승률 78.1%)의 전적을 거두고 있으며, 기성전 리그에서도 4승으로 단독선두로 도전권 획득이 유력하다. 난적 서봉수9단과 유창혁5단이 2패를 기록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욱 크다.
기왕전리그에서도 4승1패로 5승의 장수부5단과 양재호8단을 바싹 추격 중에 있다. 그러나 이5단에겐 지금이 일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그의 나이 이제 17세로 사춘기의 고비에 있는 것이다. 사춘기의 고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법. 주위의 각별한 배려가 필요한때다.
과거 조치훈9단도 4단 시절인 14, 15세때 사춘기의 고민으로 슬럼프에 빠졌지만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대성할 수 있었다.
이5단은 지난 7윌15일「제2기 응씨배」에서 여성 최강 루이네웨이 9단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총격이 컸던지 귀국하여 양재호 8단과 황원준 7단에게 내리 패했을 뿐만 아니라 부친 이재룡씨에게『바둑을 그만두고 싶습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으나 지금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인상이어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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