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이 없는 미국 주택가(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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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도둑 감시는 사방 「이웃의 눈」으로
미국의 여러모습 가운데 미국인의 눈에 이색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중 하나는 담장이 없는 주택가 모습이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곳을 둘러봐도 담장이나 철조망을 찾기 어려운 곳이 미국이다.
최근 중산층이 몰려들기 시작한 대도시 교외는 말할 것도 없고 번잡하고 범죄가 많기로 유명한 뉴욕시도 맨해턴의 아파트촌에 경비가 있는 것을 예외로 하면 주택가에 담장을 찾아 보기 어렵다.
모든 주택이 가림 없이 전모습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있다.
담장이 없는 것은 주택가만이 아니다.
시청이나 우체국 등 관공서,은행 등 금융기관,회사 사무실 건물이나 공장 등 어느 시설을 가봐도 건물과 마당,그리고 주차장이 있을 뿐이다.
대학들은 건물이나 시설들이 도로의 몇 블록을 차지하며 시가의 한 일부를 형성하고 있어 처음 찾는 사람은 어디까지가 대학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출입제한이 엄할 것으로 생각되는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도 담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관학교나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유스럽게 구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고 웨스트포인트는 친절한 관광가이드까지 제공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철조망이나 담장이 없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도둑이나 범죄가 한국처럼 많지 않아서가 아니다.
또 미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 사생활을 덜 중시해서도 아니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선 갱들의 총격사건이나 강도·살인·절도사건이 매일 밥먹듯 일어나고 미국사람들은 세계 어느나라 사람보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한다.
그러나 현관이나 유리창 문단속엔 신경을 쓰면서도 거의 대부분이 담장이나 철조망을 자기주변에 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담장 없는 사회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습은 아무리 좁은 집이라도 담장이 있고 조금 크다 싶으면 그 위에 철조망까지 있는 우리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담장이 있는 사회가 이웃을 단절하며 살벌하고 각박하게 느껴지는 반면 담장 없는 사회는 이웃에 문을 열며 여유와 질서,그리고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담장이 당장 없어지면 범죄가 늘어나고 심리적 불안을 우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담장을 허물면 사방 이웃이 감시자가 되어 모두가 더 튼튼한 담장을 갖는 셈이 된다.
범죄측면에서 보면 모두 담장을 갖는 것은 모두 담장을 갖지 않는 것과 같고 담장만 넘게 되면 담장 자체가 범행의 보호막이 되는 역효과도 없지 않다.
담장을 허문다는 것은 또 우리 서로가 이웃에 마음의 문을 엶으로써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학연·지연·혈연 중심의 폐쇄성을 치유하는 더 의미 있는 효과를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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