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훈사 반야보전서 고구려 자취 찾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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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의 마애불로 꼽히는 내금강 묘길상 앞에 선 강우방 원장.

3일 오후 서울 대신동 개인연구소에서 만난 미술사학자 강우방(66) 원장은 무척 흥분한 모습이었다. 사무실 입구에는 '일향(一鄕) 한국미술사연구원'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일향은 그의 호(號). 국립경주박물관장.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그는 2004년 이곳에 연구원을 차리고 고구려 미술의 정수를 연구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강 원장은 지난주 초 사흘간 내금강을 다녀왔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린 지 9년 만에 개방된 내금강 일대 불교유적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처음부터 마음이 설렜습니다. 외금강은 경관이 빼어난 반면 내금강에는 불교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거든요. 옛 고구려 영토의 건물은 남한 것과 다를지 모른다고 예상했는데, 과연 그랬습니다."

그가 주목한 유적은 표훈사다. 통일신라 때 처음 세워져 조선 후기 중건된 표훈사는 6.25전쟁의 포화를 피해간 몇 안 되는 금강산의 사찰 중 하나다. "무엇보다 풍광이 아름다웠습니다. 예전 모습이 잘 보존돼 있었어요. 18세기에 칠한 것으로 보이는 능파루의 현란한 단청에 넋을 잃기도 했죠."

강 원장은 특히 표훈사의 '고구려적 요소'에 감탄했다. 반야보전의 웅장한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가 대표적이다. 역동적으로 솟구치는 형태에 푹 빠졌다고 했다.

"반야보전은 표훈사의 대웅전입니다. 공포의 높이가 3m 50㎝ 가량 됐어요. 남한의 사찰에도 공포가 많이 남아있지만 그 규모.형태가 표훈사의 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웅장한 지붕부와 함께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고구려 벽화의 '영기문(靈氣文)'을 그대로 건축에 옮겨놓은 모양새였습니다."

영기문은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문양을 가리킨다. 강 원장은 불꽃.구름.연꽃무늬 등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여러 문양을 동양사상의 근간인 기(氣.생명)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표훈사 반야보전의 '공포'. 화려한 단청이 돋보인다.

"표훈사는 물론 조선시대 세워진 절입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미학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어요. 표훈사 인근 백화암의 편양당(서산대사 제자)의 탑비 귀부(거북모양의 받침돌)에서도 길이 1m의 영기문을 발견했습니다. 남한에선 보지 못했던 것이죠. 그 영기문을 3차원으로 조각하면 바로 공포가 됩니다."

강 원장의 전공은 불교미술. 그는 7년 전부터 고구려 벽화를 집중 연구하며 고구려 미술이 통일신라에 영향을 주고,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졌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일례로 고구려 영기문은 신라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에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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