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환시·미 경제 불투명 “여파”/치솟는 엔화 원인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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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투기성 자금 당분간 엔화로 몰려/엔고 계속땐 일 경제회복 더딜듯
연일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엔고현상은 유럽통화에 대한 불안,미국 경제전망의 불투명으로 예상돼오던 것이다. 투기성 자금이 갈곳이 당분간 엔화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데이비드 멀포드 미 재무차관이 23일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엔화가 강세를 보여도 미국은 시장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엔고 용인」 발언을 함으로써 엔고를 더욱 부채질,외환시장에서 엔화를 치솟게 했다.
23일 뉴욕시장에서 시작된 급격한 엔고현상은 24일 동경 외환시장에서도 이어졌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하나 하나 지워나가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에서 정답을 찾는 「소거법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지난 8월 11조엔규모의 대규모 경기활성화대책을 수립했으며 1천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 통화에 대해 불안을 느낀 투기성자금은 당분간 엔화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성장률 둔화,주식시장전망 불투명 등으로 앞으로도 계속 엔화가 치솟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앞으로의 엔화전망도 각양각색이다. 달러당 1백10∼1백25엔에서 1백18∼1백26엔까지 예상환율의 폭이 크다.
이는 이번 엔고현상이 85년 9월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는 선진5개국이 달러고를 시정하자는 데 합의함에 따라 엔고가 진행된 것이지만,이번에는 유럽의 통화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일본으로서는 크게 당황하고 있다.
엔고가 사전 시나리오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자동차·전기 등 수출기업들은 연초에 책정한 환율수정작업에 들어가는 등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엔화가 오르긴 올라도 완만하게 오를 것이라는 데에는 미국과 일본의 정책당국자도 모두 동의하고 있다.
한편 엔고가 계속되면 일본의 경기회복은 늦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일본전력중앙연구소가 24일 매크로경제모델을 사용,예측한 바에 따르면 엔화가 달러당 1백20엔대 이하로 갈 경우 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은 86년 성장률 2.9%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소가 갖추고 있는 매크로 경제모델은 일본의 대표적인 거시경제모델의 하나다.
이 연구소 예측에 따르면 엔화가 달러당 1백20엔대이하로 가지않을 경우 일본의 실질경제성장률은 92년 2.9%,93년 3.3%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엔화가 1백20엔대를 돌파,1백15엔이 될 경우 일본의 실질경제성장률은 올해 2.7%,내년에 2.1%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1백엔대까지 떨어질 경우 실질 경제성장률은 올해 마이너스 0.6%,내년엔 마이너스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엔고가 계속돼도 일본제품의 수출경쟁력이 워낙 강한데다 한국처럼 일본에 원자재 및 부품을 크게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아 일본의 수출은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상품이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의 채산성이 나빠져 경영실적이 악화될 뿐이다.
이같은 상황은 85년 플라자합의후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다 기업들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등 경쟁력강화로 지난해부터 다시 큰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일본기업들은 경영합리화로 경비를 절감하고 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활로를 뚫을 수 있는 기술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난 85년이후 엔고를 극복,올해 1천억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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