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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책] '2007년의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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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07년 1월 한국투자공사(KIC) 투자부문 대표(CIO)실. CIO 그레고리 킴에게 지난 2년은 악몽이었다.

악착 같은 투자관리로 성공한 그를 월가는 '그리디(Greedy:탐욕스럽다) 킴'으로 불렀다. KIC의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며 정부가 일부러 미국시민인 그를 뽑은 것이다.

'놀고 있는'외환보유액 1천7백억달러 중 2백억달러를 떼내어 KIC를 만든 게 2년 전이었다.

물론 그때까지 외환운용 책임을 지고 있던 한국은행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그동안의 외환 운용 수익이 좋았다''한은에도 투자전문가가 많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KIC의 돈에 이끌려 국제투자기관들이 몰려 올 것이다' 또 '이들을 통해 깊숙한 국제금융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 앞에 '수익성보다 안정' 같은 소리는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 허브의 꿈은 처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디 킴이 미국투자은행 출신임을 질시한 유럽계 투자은행뿐 아니라 미국계 경쟁 투자은행들마저 KIC를 외면한 것이다.

곧 정부 간섭이 시작됐다. 금융 허브에 목마른 재경부는 '왜 외국투자기관들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조이고, 처음부터 삐딱했던 한은은 '이 정도 수익 올리겠다고 보유외환을 썼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래서 안정성을 고려해 미국 국채에 투자했던 것을, 막 본격화하기 시작한 중국 민영화기업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은이 '나랏돈을 고위험 증권에 투자해도 되느냐'고 나서기도 했지만, 고수익이 1년 넘게 계속되자 어느새 KIC 평가위원회는 그리디 킴을 칭찬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잠시. 중국경제가 꺼지면서 민영기업의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회계분식 때문에 CEO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증권이 폭락을 거듭했다.

KIC 투자원금마저 까지기 시작했다. 원화 환율이 뛰고 한국 국채가 폭락했다. 드디어 블룸버그가 '한국, 제2의 외환위기 조짐'이란 기사를 띄웠다.

'글루미(Gloomy.우울하다)킴'이 된 그가 지금 고민하는 건 퇴진 여부가 아니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KIC의 경영실패가 알려진 지금, 그가 몸담았던 뉴욕의 투자은행 외에는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게 된 것이다.

그의 고민은 뉴욕 본가에 무엇을 안겨주고 그곳으로 돌아가느냐였다.

그가 뉴욕 본가에 선물할 수 있는 것은 KIC가 곧 중국투자를 포기할 것이라는 정보뿐이었다. 그에겐 이제 어떻게 이 정보를 들키지 않고 전달하느냐의 선택밖에 남지 않았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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