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을 자극하는 수컷의 상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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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31면

난 가끔 예리한 칼을 사용한다. 칼을 쓸 일이 있다는 것, 퇴화된 남성성의 회복 방법이라 생각한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일은 가장 아름다운 수컷의 모습이라고 선배들로부터 배웠다. 칼을 통해 수컷의 습속은 은연중 유지된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오피넬(OPINEL)’ 접이식 칼

칼은 생존의 도구이자 상징이다. 생존을 위한 칼날은 예리하고 날카로워야 하며 상징을 위해선 위엄과 깊이를 지녀야 한다. 좋은 칼을 지니고 싶은 수컷들의 욕구는 본능이다. 실추된 현재의 남성성에 항거하는 몸짓으로 칼에 대한 동경은 자연스럽다.

프랑스의 ‘조제프 오피넬’이 만든 칼을 보고 단번에 반해버렸다. 1890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칼을 세상에 내놓은 인물. 단 한 번에 먹이를 베기 위해 날카로운 칼날과 손에 쥐기 편리한 손잡이를 결합시킨 ‘오피넬(OPINEL)’은 기대를 만족시키는 완성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빅토리녹스’를 버릴 만큼 ‘오피넬’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호전적이고 날카로운 칼끝과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는 휘어질 듯 유연하다. 이는 디자인을 위한 얍삽함이 아니다. 먹이를 찌르고 자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예리하고 손에 편하게 잡히지 않으면 안 되는 탓이다. 공격과 방어의 가장 합리적인 모습은 극단을 녹이는 유연함이었다.

‘오피넬’을 가지고 원시의 남성을 흉내내본다. 잡은 먹이는 단칼에 해치워야 먹거리에 대한 예의다. 잡은 생선은 고통이 번지기 전에 회를 떠야 한다. 등뼈의 반을 갈라 편을 뜨고 빨리 자르기 위해선 예리한 칼날과 손잡이가 필수다. 도구는 원하는 만큼 움직여야 한다. 먹이는 먹을 수 있을 만큼이 모두의 몫이다. 식솔의 입에 들어가야 먹이의 효용성은 제 역할을 다 한다. 칼의 효율과 식솔의 배부름은 밀접한 관계로 이어진다.

칼은 언제 어디서든 사용하기 위해 휴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접이식 칼인 ‘오피넬’은 작지만 결코 작지 않다. 칼날의 개폐를 조절하는 원통형 잠금장치는 간단하면서 완벽하다. 오랜 세월 고민했던 ‘오피넬’의 예지가 담긴 경험의 산물이다. 군더더기 없는 외형의 완결은 먹이를 향한 인간의 집념을 보여준다.

감탄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오피넬’은 칼의 기능적인 면을 극대화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완성시킨 업적으로 1985년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품 100선’에 꼽혔다. 이어 프랑스의 ‘라루스’ 백과사전에도 자국의 대표적인 국가재산 목록에 올랐으며, 미국의 현대미술 박물관 컬렉션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아프리카의 토착민들, 사막의 베두인족(族), 볼리비아의 인디오들도 ‘오피넬’로 먹이를 구한다. 나보다 더 절박한 이유로 ‘오피넬’은 생존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을 것이다. 칼은 남자와 생존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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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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