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창간 27돌…되짚어본 생활상|1만원의 가치변화|창간당시 만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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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돈1만원의 값어치는 어떻게 변했을까.
중앙일보가 창간된 65년에는 1만원권 지폐는 조폐공사에서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다.
60년대 중반 화폐단위는 1원·5원·10원·50원·1백원·5백원 등 여섯 가지로 최고액권이 5백원.
65년 당시 서울·부산 등 도시 여섯식구 가정의 한달 평균 생활비(소비지출)가 9천8백10원이었으니 1만원이면 한달 내내 여섯명이 집세·수도 및 전기사용료·피복비·교육비 등까지 모두 물고도 남는 목돈이었다.
또 웬만큼 잘사는 집이 아니면 옆집에서 굽는 냄새를 맡고 군침이나 삼켜야했던 길이30cm짜리 영광굴비 한 두름(10마리)이 3백80원 안팎이었으므로 1만원이면 무려 2백63마리의 굴비를 살 수 있었다.
요사이엔 물방울 다이아몬드반지니 뭐니 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금반지는 결혼식·환갑잔치 때 「예물 제1호」.
한돈 쭝에 1천6백60원으로 1만원이면 세돈 쭝 금반지 두개를 양손가락에 나눠 끼고 으스대며 거리를 활보했을 정도였다.
22kg짜리 밀가루 13부대를 사고도 남는 돈을 손가락에 끼고 다닌 셈이니 부인네들이 동네에 모여 『개똥이네는 아들이 돈벌어 사준 금반지를 끼고 웃을 때나 먼 곳을 가리킬 때 반지낀 손가락을 꼴보기 싫게 내세운다』고 흉보면서도 내심 부러움을 느끼던 세월이었다.
서민층에선 1년을 통틀어 명절에나 「소가 휘젓고 헤엄쳐 간 듯한」국물이나마 먹을 수 있던 쇠고기 한근에 1백58원, 먹음직한 사과상품(국광) 한개에 12원, 연탄 한 장에 8∼9원, 2홉들이 소주 한병에 43원, 최고급 국산담배 「신탄진」한갑에 50원,「아리랑」 한갑에 25원, 쌀20ℓ(1말1되) 들이에 9백5원인 시절이었으니 1만원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던 셈. 이렇듯 60년대에 대단했던 돈의 액면가치는 물가오름세 때문에 점점 떨어져 5백원 짜리 지폐로는 일상생활에서조차 결제하는데 불편만 준다고 동전으로 바뀌었고 화폐당국은 70년대들어 고액권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72년7월에 5천원짜리, 73년6월에 1만원짜리, 77년6월에 5천원짜리 새 지폐를 차례로 찍어낸 것.
그만큼 70년대 들어 1만원의 가치가 상당치 떨어지고 사람들의 씀씀이도 달라졌다.
국내 전산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4만6천여원(75년·경제기획원통계).
75년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고 사무관으로 채용된 공무원의 초임이 약10만원이었고 손꼽히는 대기업의 대졸사원 초임이 15만원 안팎이었다.
또 평균5·18명인 도시의 한 가구당 생활비(소비지출)는 6만5천여원이었다.
이때는 금값파동이 일어 74년보다 약1·5배 훌쩍 뛰었고 금반지 한돈쭝에 1만3천여원으로 이미 1만원으로는 실가락지도 끼지 못할 정도가 됐다.
국광 사과 값도 한 개에 50원, 연탄 한장에 33∼35원, 쇠고기 한근에 9백58원, 22kg짜리 밀가루 한 부대에 2천4백40원으로 뛰었다.
85년에는 전산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가 32만4천여원, 소값파동으로 83년 한근에 4천9백90원이었던 쇠고기가 3천6백여원, 연탄 한장에 1백65원이었으며 도시 가구의 한달 생활비(가구당4·4명꼴, 소비지출)는 약32만3천원. 1만원이 도시가구의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성장에 따라 삶의 질이 변한 점을 고려치 않고 단순 비교할 경우 20년전 보다 약 33분의1로 줄어든 셈이다.
그로부터 또 7년이 지난 92년 현재 산업계의 월평균 임금은 60만원이며 한우 한근에 9천원 안팎, 「88디럭스담배」 한 갑이 7백원, 가정용연탄 한 장에 1백또85이고 도시의 월평균생활비(가구당 3·99명)는 약70만원.
따라서 1만원의 값어치는 중앙일보가 창간된 65년 이후 지금까지 엄청나게 변해 도시주민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할 때 70분의 1에도 못 미치게 됐다.
현재는 화폐발행액의 85%이상이 1만원권이다.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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