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서머타임제를 싫어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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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가 서머타임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면서, 근무 시간이 늘지 않는 형태의 서머타임제 재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제2차 대전 직후 미국의 권고로 4년간 서머타임제를 실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이 제도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다시 촉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이 서머타임제를 시행하면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아이슬랜드와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아이슬랜드는 여름철 백야 현상으로 서머타임제를 실시할 이유가 없는 나라. 따라서 OECD 국가 중 실질적으로 서머타임제를 실시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최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함께 서머타임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정부도 서머타임제의 2008년 도입을 목표로 여론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서머타임제를 연장한 것도 도입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은 1986년부터 매년 4월 첫 번째 일요일에 시작해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끝나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해왔다. 그러나 올해 서머타임은 기존 기간에 비해 3주 일찍 시작돼 한 주 늦게 끝나게 된다. 미 의회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서머타임을 한 달 연장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87개국. 지구 온난화가 세계 각국의 골칫거리로 등장하면서 에너지 절약이라는 명분이 큰 힘으로 작용해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는 나라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란처럼 15년간 써왔던 서머타임제를 오히려 폐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란이 지난해 갑자기 서머타임제를 폐지한 것은 강경 반미 성향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서민을 중시하고 종교적 색채를 강화하는 방안의 하나였다. 여전히 일출과 일몰에 의존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배려하고, 하루 5차례에 걸쳐 하는 이슬람식 기도의 혼선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

재계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서머타임제 재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국민 정서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국내에서는 서머타임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유난히 높다. 최근 서머타임제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의견이 많아지긴 했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412명을 대상으로 5월 말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찬성 의견이 51.7%였지만 반대 역시 36.4%나 됐다.

그렇다면 유독 우리 국민들에게 서머타임제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유는 뭘까? 첫째는 정부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동계의 반발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 기업 문화에서 근로자들이 1시간 앞당겨 출근한다고 그만큼 일찍 퇴근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론을 편다. 오히려 근무 시간만 늘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서머타임제 재도입 논의가 제기될 때마다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펴왔다. 지난해에 산업자원부가 재도입 추진 방침을 밝히자, 각 노동 단체들은 연대해 총력 저지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88 올림픽 당시 임시로 도입했던 경험 탓이다. 서구 선진국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제도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각인된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2년여 만에 다시 제도를 폐지했다. 서머타임제 도입과 폐지로 오히려 혼란이 더 커진 셈이다. 서머타임제로 인한 혼란이 실제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국내의 경우 이미 잘못된 표준시 때문에 우리 생활 리듬에 맞는 시간보다 이미 30분 앞당겨 생활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한제국 시절 표준 자오선을 동경 127° 30'로 정했다가, 5.16 직후 일본과 같이 동경 135°로 맞추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표준시는 일본과 같다('코리안 타임'으로 통하는 우리의 어설픈 시간 감각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여론 수렴 작업으로 서머타임제에 대한 반감이 많이 줄어들지 관심사다.

☞서머타임(summer time)=여름철 해당 지역의 표준시보다 1시간 시간을 앞당기는 제도. 등화 관제가 용이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도입한 후 전세계적으로 퍼졌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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